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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 Aug, 2026
보트가 물살을 거슬러, 초록 불빛과 마지막 여운 — 위대한 개츠비 줄거리 9화(결말)
9화. 보트가 물살을 거슬러 2년이 지난 지금,그날과 그다음 날은 오직 경찰과 기자들이 개츠비의 현관을 끝없이 드나들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누군가 "미치광이"라는 표현을 썼고, 그 말이 다음 날 신문 기사의 논조를 결정했다. 대부분의 보도는 그로테스크하고 근거 없는 악몽 같은 이야기였다.심문에서 마이클리스의 증언이 윌슨의 의심을 밝혀냈을 때 나는 이 이야기가 온갖 저속한 풍자로 번질까 걱정했지만,캐서린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놀랄 만큼 단호한 눈으로 검시관을 마주 보며, 동생이 개츠비를 만난 적도 없고 남편과 완벽하게 행복했으며 어떤 부정한 짓도 하지 않았다고 맹세했다.그렇게 윌슨은 "슬픔으로 실성한 남자"로 정리되었고, 사건은 가장 단순한 형태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나에게 본질에서 멀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개츠비의 편에 서 있었고, 완전히 혼자였다.그가 그 집 안에서 몇 시간이고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동안, 나는 이 일이 내 책임이라는 걸 깨달았다.아무도 진심으로 관심 갖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발견한 지 삼십 분 만에 나는 거의 본능처럼 데이지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그녀와 톰은 그날 오후 일찌감치 짐을 챙겨 떠난 뒤였다."남긴 주소 없나요?""없습니다.""언제 돌아온다는 말은?""몰라요." 사흘째 되던 날,미네소타의 한 마을에서 헨리 C. 개츠라는 서명이 담긴 전보가 도착했다.즉시 출발하니 자신이 도착할 때까지 장례식을 미뤄달라는 내용뿐이었다. 그날 밤, 몹시 겁먹은 목소리의 누군가가 전화를 걸어와 내 이름을 먼저 확인한 뒤에야 자기 이름을 밝혔다.클립스프링어였다. "장례식은 내일이야." 내가 말했다."세 시, 여기 집에서. 관심 있을 만한 사람들한테 좀 전해줘." "아, 그럴게." 그가 서둘러 말했다."물론 딱히 만날 사람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그 말투가 이상하게 느껴졌다."당연히 자네는 올 거지?" "물론 최선을 다해 볼게. 그런데 내가 전화한 건..." 그는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그리니치 쪽 사람들 집에 머물고 있는데, 내일 나랑 같이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어서. 소풍 같은 게 있거든." 나는 참지 못하고 "허!" 소리를 냈고, 그도 들었는지 서둘러 덧붙였다."실은 전화한 이유는 그 집에 두고 온 신발 한 켤레 때문인데.집사한테 좀 보내달라고 부탁해도 될까? 테니스화인데, 그게 없으면 좀 곤란해서." 나는 이름의 나머지 부분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장례식 날 아침, 나는 마이어 울프심을 만나러 뉴욕으로 갔다.개츠비의 이름을 대자 이내 그가 두 손을 내밀며 엄숙하게 나타났다. "그를 처음 만났던 때가 아직도 생생해요." 그가 말했다."군대에서 막 나온 젊은 소령, 훈장을 잔뜩 달고 있었지만 정작 정장 살 돈이 없어서 계속 군복을 입고 다녔지.43번가 와인브레너의 당구장에 와서 일자리를 찾던 게 처음이었어요.며칠을 굶은 상태였지.'나랑 점심이나 먹지' 했더니 삼십 분 만에 4달러어치도 넘게 먹더군요." "이제 그는 죽었습니다." 잠시 후 내가 말했다."가장 가까운 친구셨으니, 오늘 오후 장례식에 오고 싶으실 것 같아서요." "가고 싶긴 하지." "그럼 오세요." 그의 콧수염이 살짝 떨렸고, 고개를 젓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그럴 수가 없어. 얽히고 싶지 않아.사람이 죽는 일에는 어떤 식으로든 얽히고 싶지 않아.젊었을 땐 달랐지.친구가 죽으면 어떻게 죽었든 끝까지 함께했어.정말 그랬어. 끝까지." "살아있을 때 우정을 보여주는 법을 배워야지, 죽고 난 뒤가 아니라." 그가 말했다."그 뒤로는, 나는 뭐든 그냥 내버려두는 게 원칙이야." 그날 오후 나는 이슬비 속에 웨스트에그로 돌아왔다.옆집에 가보니 개츠 씨가 흥분한 채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다."지미가 나한테 이 사진을 보냈어." 그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지갑을 꺼내며 말했다.귀퉁이가 다 닳고 여러 손을 탄 개츠비의 저택 사진이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너덜너덜해진 『홉얼롱 캐시디』라는 책을 꺼냈다.뒤표지를 펼쳐 나에게 보여줬다.마지막 면지에는 "일과표"라는 글자와 1906년 9월 12일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기상 오전 6시. 아령 운동과 담벼락 오르기 6:15~6:30... 그 아래로는 다짐 목록이 이어졌다.셰이퍼스에서 시간 낭비하지 않기,매주 유익한 책이나 잡지 한 권 읽기,매주 5달러(줄을 긋고 3달러로 고쳐) 저축하기,그리고 마지막 한 줄. 부모님께 더 잘하기. "우연히 발견한 책이야." 노인이 말했다."이것 좀 보라고, 안 그런가?" "정말 그렇네요." "지미는 뭐가 돼도 될 놈이었어.늘 이런 다짐 같은 걸 세워두곤 했지.자기 정신을 향상시키는 것에 대해 적어둔 거 보이나?"세 시가 조금 못 되어 플러싱에서 루터교 목사가 도착했고,나는 저도 모르게 다른 차가 오는지 창밖을 살피기 시작했다.하지만 소용없었다.아무도 오지 않았다. 다섯 시쯤 세 대의 차로 이루어진 행렬이 굵은 이슬비 속에 묘지 입구에 멈춰 섰다.묘지 문으로 들어서는데 차 한 대가 멈추고 누군가 젖은 땅을 첨벙거리며 우리를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돌아보니, 석 달 전 어느 밤 개츠비의 서재에서 책이 진짜인지 감탄하고 있던 그 부엉이 눈 안경의 사내였다. "집엔 못 갔어요." 그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런! 세상에나, 예전엔 수백 명씩 그 집에 몰려갔었는데." 그는 안경을 벗어 다시 닦았다. "가엾은 놈." 그가 말했다. 가장 생생한 기억 중 하나는 예비학교에서, 나중엔 대학에서 크리스마스마다 서부로 돌아가던 순간들이다.시카고, 밀워키 앤드 세인트폴 철도의 흐릿한 노란 객차가 게이트 옆에서 크리스마스 그 자체처럼 명랑하게 서 있던 모습. 기차가 겨울밤과 진짜 눈 속으로,위스콘신의 작은 역들이 흐릿한 불빛과 함께 스쳐 지나갈 때, 공기 속에 문득 날카롭고 거친 활력이 감돌았다.그 낯설고 강렬한 한 시간 동안 우리는 이 땅과 하나가 되었다는 걸 뼛속 깊이 느꼈다가, 이내 다시 그 안으로 구분 없이 녹아들었다. 그것이 나의 중서부였다.젊은 날 설레며 돌아가던 그 기차들, 서리 낀 어둠 속 가로등과 썰매 방울 소리, 불 켜진 창문이 눈밭에 드리우던 호랑가시나무 화환의 그림자. 이제 알겠다. 이건 결국 서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는 걸.톰과 개츠비, 데이지와 조던, 그리고 나까지, 우리 모두 서부 출신이었고,어쩌면 우리에게는 동부 생활에 은근히 적응하지 못하게 만드는 어떤 공통된 결핍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동부가 나를 가장 흥분시킬 때조차, 나에게 동부는 늘 어딘가 뒤틀린 느낌이었다.특히 웨스트에그는 지금도 내 기이한 꿈속에 종종 등장한다.엘 그레코의 밤 풍경처럼, 음침하게 드리운 하늘과 광채 없는 달 아래 백여 채의 집들이 웅크린 모습으로.개츠비가 죽은 뒤로 동부는 나에게 그렇게, 도무지 바로잡을 수 없을 만큼 뒤틀린 채로 씌어 있었다. 떠나기 전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었다.조던 베이커를 만나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 그리고 그 뒤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했다.그녀는 큰 의자에 완전히 가만히 누워 귀 기울여 들었다. 내가 말을 마치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이 다른 남자와 약혼했다고 알렸다.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놀란 척했다. "그래도 자기는 나를 차버렸어." 조던이 불쑥 말했다."전화로 나를 차버렸잖아. 이제 자기한텐 관심 없지만, 그건 나한테 처음 겪는 일이라 한동안 좀 어지러웠어." 우리는 악수를 나눴다. 몇 주 뒤 나는 5번가에서 톰 뷰캐넌과 마주쳤다.그는 앞서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당황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왜 그래, 닉? 나랑 악수하기 싫어?" "싫어. 내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잖아." "자네 미쳤군." 그가 재빨리 말했다. "톰," 내가 물었다. "그날 오후에 윌슨한테 뭐라고 한 거야?" 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봤고, 사라진 그 몇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내 짐작이 맞았다는 걸 알았다.돌아서려는데 그가 따라와 내 팔을 붙잡았다.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 그가 말했다."우리가 떠날 준비를 하는데 그 남자가 문 앞에 나타나서, 우리가 없다고 전했는데도 억지로 위층까지 올라오려 했어.내가 그 차 주인이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았으면 나를 죽일 만큼 미쳐 있었어.그 남자는 집 안에 있는 내내 주머니 속 권총에 손을 얹고 있었다고." 그는 반항적으로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내가 말해줬다고 해서 뭐? 그 자식은 자업자득이었어.개를 치듯 머틀을 치고는 차를 세우지도 않았잖아." 나는 할 말이 없었다.오직 말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만 빼고는. 나는 그를 용서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었지만,그가 한 일이 그 자신에게는 완전히 정당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모든 게 부주의하고 뒤엉켜 있었다.톰과 데이지는 부주의한 사람들이었다.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그 거대한 부주의함 속으로 물러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이 어질러놓은 걸 치우게 내버려두었다. 나는 그와 악수했다.하지 않는 게 오히려 우스울 것 같았다. 내가 떠날 때까지 개츠비의 집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토요일 밤이면 뉴욕에서 시간을 보냈다.그 눈부신 파티들이 여전히 생생해서, 정원에서 흘러나오던 음악과 웃음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떠나기 마지막 날 밤, 트렁크는 싸두었고 차는 식료품점 주인에게 팔았다.나는 다시 한번 그 거대하고, 어수선하게 무너져버린 저택을 보러 건너갔다.하얀 계단 위에는 어느 소년이 벽돌 조각으로 휘갈긴 상스러운 낙서가 달빛 아래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나는 신발 밑창으로 그것을 긁어 지웠다.그러고는 해변으로 내려가 모래 위에 몸을 뉘였다. 큰 해변 저택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해협 건너 페리보트의 흐릿하게 움직이는 불빛 말고는 거의 아무 빛도 없었다.달이 점점 높이 떠오르며 대수롭지 않은 집들은 하나둘 녹아 사라지고,서서히 나는 이 오래된 섬, 신세계의 싱그러운 초록빛 젖가슴 같던 그 옛 땅을 알아차렸다. 짧고도 매혹적인 그 한순간,나는 데이지의 부두 끝에서 그 초록 불빛을 처음 발견했을 때 개츠비가 느꼈을 경이로움을 떠올렸다. 그는 이 푸른 잔디밭에 이르기까지 아주 먼 길을 왔고, 그의 꿈은 손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그는 몰랐다.그 꿈은 이미 그의 등 뒤, 도시 너머 저 광막한 어둠 속 그 아득한 곳에 남겨져 있었다는 걸. 개츠비는 그 초록 불빛을 믿었다.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조금씩 멀어져가는, 열광으로 가득한 미래를. 그때는 손에 닿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내일은 좀 더 빨리 뛰고, 팔을 좀 더 멀리 뻗으면 되니까…그리고 어느 맑게 갠 아침엔... 그렇게 우리는 계속 나아간다. 물살을 거스르는 조각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 물살을 거스르는 조각배처럼, 고전의 깊은 여운을 8가지 다양한 향미의 일킬로 드립백 커피 한 잔과 함께 음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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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Jul, 2026
웨스트에그의 이방인 — 위대한 개츠비 줄거리 1화
1화. 웨스트에그의 이방인 비판하고 싶어질 때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너만큼 유리한 조건을 갖고 태어난 건 아니라는 걸 기억하라. 아버지가 오래전 건넨 이 한마디를, 나는 지금까지도 가끔 곱씹는다. 그 말만 하고 더는 덧붙이지 않았지만, 말수 적은 우리 부자는 서로 통하는 데가 있어서 나는 그 속에 훨씬 많은 뜻이 담겼다는 걸 알았다. 그 뒤로 나는 웬만해선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덕분에 다양한 사람의 속내를 알게 됐지만, 대학 시절엔 억울하게 "정치질하는 놈"이라는 오해까지 샀다. 판단을 유보하는 것도 결국은 무한한 희망의 문제다. 근본적인 품위란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하게 나눠지는 법이니까. 그래도 이 관대함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지난가을 동부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이 세상이 좀 더 도덕적인 모습으로 영원히 멈춰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단 한 사람, 개츠비만은 예외였다. 이 책에 이름을 빌려준 그 남자. 사실 그는 내가 진심으로 경멸하는 모든 것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그에게는 뭔가 근사한 구석이 있었다. 만 마일 떨어진 지진까지 감지하는 정밀한 기계처럼, 삶이 건네는 아주 작은 가능성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각. 다시는 만나기 힘들 만큼 순수한 희망의 재능이었다. 개츠비는 결국 괜찮은 사람으로 남았다. 문제는 그를 갉아먹은 것들, 그의 꿈을 뒤따라온 더러운 먼지 쪽이었다. 우리 집안은 중서부의 이 도시에서 삼대째 이름 있는 집안이었다. 할아버지의 형이 1851년에 이곳에 건너와 남북전쟁에는 대리인을 보내고 도매 철물업을 시작했고, 그 사업을 지금은 아버지가 이어받아 하고 있다. 1915년, 나는 아버지보다 딱 25년 늦게 뉴헤이븐(예일대)을 졸업했고, 얼마 뒤에는 사람들이 "지연된 게르만족의 이동"이라 부르던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반격 작전이 어찌나 신났던지 돌아와서도 도무지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세상의 중심 같던 중서부가 이제는 세상의 변두리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동부로 가서 채권업을 배우기로 했다. 온 집안 어른들이 마치 내 예비학교를 고르듯 진지하게 회의를 열고는 무거운 얼굴로 "그래, 그러렴" 하고 허락했다. 아버지는 1년치 생활비를 대주기로 했고, 나는 1922년 봄, 이번에야말로 영영 정착할 생각으로 동부로 왔다. 회사 동료와 통근 가능한 마을에 집을 빌리기로 했지만, 마지막 순간 그가 워싱턴으로 발령 나는 바람에 나는 혼자 시골로 내려갔다. 개 한 마리(며칠 만에 도망가버렸지만)와 낡은 닷지 자동차, 아침마다 핀란드어로 뭐라 중얼거리며 식사를 챙겨주는 가정부가 내 전부였다. 혼자라 며칠은 좀 외로웠다. 그러다 어느 아침, 나보다 더 최근에 이사 온 듯한 남자가 길에서 나를 붙잡았다. "웨스트에그 마을은 어떻게 가나요?" 그가 난감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길을 알려주었다. 걸어가면서 나는 더는 외롭지 않았다. 나는 안내자였고, 최초의 정착민이었다. 그렇게 햇살과 함께 나뭇잎이 폭발적으로 자라나는 걸 보며, 나는 여름과 함께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듯한 익숙한 확신을 느꼈다. 읽을 책도 많았다. 금융과 신용, 투자증권에 관한 책을 열두 권이나 사서 책장에 꽂아두었다. 금박 표지가 마치 조폐국에서 갓 나온 새 화폐처럼 반짝였다. 미다스와 모건, 마이케나스만 알던 반짝이는 비밀들을 곧 나에게도 펼쳐 보여줄 것 같았다. 내가 북미에서 가장 기묘한 동네 중 하나에 집을 얻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뉴욕에서 동쪽으로 뻗어 나온 좁고 소란스러운 섬, 그곳에는 자연이 만든 신기한 지형이 하나 있다. 도심에서 20마일 떨어진 곳, 만을 사이에 둔 두 지역은 거대한 달걀처럼 크기와 모양은 닮았지만, 그 안의 모든 것은 서로 달랐다. 나는 웨스트에그, 그러니까 덜 세련된 쪽에 살았다. 해협에서 불과 50야드 떨어진 작은 집이었지만, 양옆으로 거대한 저택이 들어서 있었다. 그중 오른쪽의 호화로운 저택은 노르망디의 시청을 닮은 탑과 대리석 수영장과 넓은 정원을 갖춘 곳으로, 바로 개츠비의 집이었다. 나는 아직 그를 알지 못했기에 그저 ‘그런 이름을 가진 신사가 사는 집’이라고만 생각했다. 초라한 내 집은 백만장자들의 저택 사이에 끼어 있었지만, 덕분에 바다와 이웃의 잔디밭을 누리며 그들과 이웃한다는 작은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만 건너편, 세련된 이스트에그의 하얀 저택들이 물가를 따라 반짝였다. 이 여름의 이야기는 내가 톰 뷰캐넌 부부와 저녁을 먹으러 그곳으로 차를 몰고 간 저녁부터 시작된다. 데이지는 나의 육촌이었고, 톰은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뉴헤이븐에서 이름난 미식축구 선수였던 톰은 스물한 살에 이미 전성기를 누렸고, 넉넉한 집안 배경을 등에 업고 폴로용 조랑말까지 끌고 동부로 왔다. 데이지는 이번에는 정착할 거라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 따뜻하고 바람 부는 저녁,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두 옛 친구를 만나러 이스트에그로 차를 몰았다. 집은 생각보다 훨씬 화려했다. 밝은 빨강과 흰색의 조지 왕조풍 대저택이 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잔디밭은 해변에서 시작해 4분의 1마일을 달려와 현관 앞까지 이어졌고, 화단을 지나 현관에 이르자 승마복 차림의 톰 뷰캐넌이 다리를 벌리고 현관에 서 있었다. 뉴헤이븐 시절보다 훨씬 거칠고 위압적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서른 살의 그는 튼튼한 체격에 밀짚색 머리, 딱딱한 입매와 오만하게 빛나는 눈을 지닌 남자였다. 마치 무엇이든 힘으로 밀어붙일 듯한 기세가 온몸에 배어 있었고, 승마복의 부드러운 분위기로도 그 묵직한 힘은 감춰지지 않았다. 얇은 재킷 아래로 움직이는 어깨 근육은 그의 잔인할 만큼 강한 육체를 드러냈다. 거칠고 허스키한 테너 음성은 그런 인상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조차 은근히 깔보는 말투가 배어 있었다. "내 의견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는 말라고." "그저 내가 너보다 힘도 세고 더 남자답기 때문이지." 그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여기 괜찮은 곳을 마련했지." 그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말했다. "원래 석유업자 드메인 소유였어. 안으로 들어가지." 높은 복도를 지나 밝은 장밋빛 공간으로 들어섰다. 양쪽 끝에 프랑스식 창문이 열려 바람이 방 안을 가로질렀고, 커튼이 창백한 깃발처럼 부풀어 올랐다. 방 안에서 유일하게 미동도 없는 건 커다란 소파뿐이었는데, 그 위에 두 젊은 여자가 마치 계류된 열기구처럼 둥실 떠 있었다. 한 명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소파 끝에 늘어져 누운 채, 턱을 살짝 든 모습이었다. 다른 한 명, 데이지는 일어나려는 시늉을 하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우스꽝스럽고도 사랑스러운 웃음이었다. "나 너무 행복해서 마비될 지경이야." 데이지는 다시 웃으며 내 손을 잡고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만나고 싶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고는 소파의 그 여자가 조던 베이커라고 낮은 목소리로 슬쩍 알려주었다. 식사가 시작되자마자 톰은 요즘 읽었다는 책 이야기를 꺼냈다. "이건 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거야. 우리가 지배 인종이라는 거지. 정신 차리지 않으면 다른 인종들한테 다 뺏길 거라고." "우리가 눌러야지." 데이지가 타는 듯한 석양을 향해 짓궂게 눈을 찡긋하며 속삭였다. 집사가 다가와 톰의 귀에 뭔가를 속삭이자 톰은 얼굴을 찌푸리고 말없이 자리를 떴다. 데이지는 목소리를 낮추고 집사의 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톰과 데이지가 함께 돌아왔을 땐 "어쩔 수 없었어"라는 한마디뿐이었다. 톰과 조던이 서재로 건너간 사이, 나는 데이지를 따라 앞쪽 현관으로 나갔다. "우리 서로 잘 몰라, 닉. 사촌인데도. 내 결혼식에도 안 왔잖아." "전쟁에서 아직 안 돌아왔을 때였어." "맞다. 나 그동안 힘든 일이 많았어. 이제 웬만한 건 다 시니컬하게 봐." 나는 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있잖아, 얘 태어났을 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듣고 싶어?" 딸이 태어난 지 한 시간도 안 됐을 때, 마취에서 덜 깬 채로 간호사에게 아들이냐 딸이냐부터 물었다고 했다. 딸이라는 대답에 고개를 돌리고 울었다고. "잘됐다, 딸이라서. 이 세상에서 여자한테 제일 좋은 건 예쁘고 어리석은 바보가 되는 거니까." 그렇게 중얼거렸다고 했다. 안에서는 톰과 조던이 카우치 양 끝에 앉아 있었다. 조던이 신문을 읽어주다가 일어났다. 내일 웨스트체스터에서 시합이 있다고 했다. "그 여자 좋은 애야." 톰이 말했다. "가족들이 그렇게 나돌아다니게 두면 안 되지." "누가 안 된대?" 데이지가 차갑게 물었다. 몇 분 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시동을 거는데 데이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잠깐! 서부에서 누구랑 약혼했다는 소문 들었는데?" "그건 명예훼손이야. 나 그럴 돈도 없어." 두 사람의 이런 관심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어딘가 혼란스럽고 조금 불쾌한 채로 그 집을 나섰다. 데이지라면 아이를 품에 안고 뛰쳐나올 법도 한데, 그럴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톰에게 "뉴욕에 여자가 있다"는 소문은, 그가 책 한 권 때문에 우울해했다는 사실보다는 오히려 덜 놀라웠다. 이미 한여름이었다. 웨스트에그의 집에 도착해 차를 넣고, 마당의 낡은 잔디 롤러 위에 잠시 앉아 있었다. 바람은 잦아들고 밤은 요란하고 밝았다. 고양이 한 마리의 그림자가 달빛 사이로 흔들리며 지나갔다. 고개를 돌려 그 고양이를 좇던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50피트쯤 떨어진 곳, 이웃집 저택의 그림자 속에서 한 남자가 나와 두 손을 주머니에 찌른 채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유로운 몸짓과 잔디 위에 단단히 딛고 선 두 발이, 그가 바로 개츠비 씨라는 걸 짐작케 했다. 말을 걸어볼까 했다. 하지만 나는 부르지 않았다. 그가 혼자 있고 싶어 한다는 걸 문득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어두운 바다를 향해 팔을 이상하게 뻗었다. 멀리서 봐도 그의 몸이 떨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바다 쪽을 돌아봤지만, 저 멀리 아주 작은 초록 불빛 하나만 보였다. 어느 부두의 끝자락쯤 될까 싶었다. 다시 개츠비 쪽을 봤을 때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고요하지만 어딘가 술렁이는 어둠 속에서 나는 다시 혼자였다. 다음 화 예고: 이 저택의 주인은 밤마다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그의 정체는 다음 화, 재의 계곡을 지나서야 조금씩 드러난다. 📖 작품을 더 깊이 읽고 싶다면, 이 책으로 이어서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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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Jul, 2026
양 한 마리만 그려줘 — 어린 왕자 줄거리 1화
1부. 사막에서, 어린 왕자를 만나다부제: 양 한 마리만 그려줘사하라 사막 한복판, 엔진이 멈춘 비행기 곁에서 한 남자가 낯선 목소리에 잠을 깹니다. "양 한 마리만 그려줘." 물도 길잡이도 없이 죽음과 마주한 그 밤, 이렇게 시작된 만남이 훗날 가장 이상하고도 가장 잊을 수 없는 우정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1화. 사막에서 만난 이상한 부탁 여섯 살 무렵, 원시림에 관한 책에서 본 그림 하나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보아뱀이 짐승을 통째로 삼키고 여섯 달 동안 꼼짝없이 소화만 시킨다는 대목이었어요. 그 장면이 궁금해 색연필로 첫 그림을 그렸는데, 어른들에게 보여주자 돌아온 대답은 하나같이 "모자"였습니다. 사실 그 그림은 모자가 아니라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었어요. 답답한 마음에 이번엔 뱀 속을 그대로 그려 보여줬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어른들은 그림 대신 지리와 역사, 산수와 문법을 배우라고 했고, 그렇게 여섯 살에 화가의 꿈을 접었어요. 어른들은 언제나 설명을 들어야만 이해했고, 아이에게는 그것이 참 피곤한 일이었어요. 화가 대신 조종사가 되어 세계를 날아다니게 됐을 때, 뜻밖에도 그 지리 지식이 쓸모가 있었어요. 길을 잃어도 그곳이 중국인지 애리조나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으니까요. 살면서 제법 똑똑해 보이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간직해온 그림을 보여줬지만, 대답은 늘 같았습니다. "이건 모자군요." 그 뒤로는 보아뱀도 원시림도 별 이야기도 꺼내지 않고, 브리지와 골프와 정치와 넥타이 이야기만 나눴어요. 어른들은 그런 사람을 상식적이라며 반겼습니다. 그렇게 혼자 지내던 6년 전, 사하라 사막에서 엔진이 고장 났어요. 정비사도 동승자도 없이, 겨우 여드레치 물만 지닌 채였습니다. 첫날 밤 사람 사는 곳에서 천 마일 떨어진 모래 위에서 잠들었으니, 뗏목에 매달린 조난자보다도 고립된 처지였던 셈이에요. 새벽녘, 낯선 목소리가 잠을 깨웠습니다. "양 한 마리만 그려줘…" 눈을 떠보니 처음 보는 아이가 진지한 얼굴로 서 있었어요. 길을 잃거나 지치거나 겁에 질린 기색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이 상황이 너무 신비로워 차마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어요. 그림이라곤 보아뱀뿐이라 그것부터 다시 그렸더니 아이는 딱 잘라 거절했습니다. 내가 사는 별은 아주 작아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양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벌써 병들었잖아" 하며 퇴짜를 놓았고, 다시 그려도 같은 반응이었어요. 다음 그림엔 뿔이 있다며 숫양이라고 웃었고, 그다음엔 너무 늙었다며 오래 사는 양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엔진 수리가 급했던 터라 인내심이 바닥나, 상자 하나를 대충 그려 툭 내밀었어요. "이게 상자야. 네가 원하는 양은 이 안에 있어." 아이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딱 원하던 거라며, 그 양에게 풀이 많이 필요하겠느냐고 물었어요. 집이 워낙 좁으니 넉넉할 거라 답하자, 아이는 그림 쪽으로 고개를 숙이더니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렇게 작지도 않네… 봐, 벌써 잠들었어." 그렇게 어린 왕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대체 어디서 온 걸까요.2화. 집보다 작은 별에서 온 아이 비행기에 관한 질문 하나로, 이 아이가 하늘에서 왔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질문은 늘 아이의 몫이었고, 되묻는 물음에는 좀처럼 대답하지 않았어요. 무심코 흘린 말들이 쌓이고 나서야 아이가 어디서 왔는지 조금씩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를 처음 본 날,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건 뭐냐고 물었어요. 조종사라는 사실이 내심 뿌듯해 날아다니는 내 비행기라고 말하자, 아이가 외쳤습니다. "그럼 하늘에서 떨어졌겠네!"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는 맑은 웃음을 터뜨렸어요. 불행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주길 바랐던 입장에서는 그 웃음이 못내 거슬렸습니다. 그러더니 아이가 되물었어요. 그럼 당신도 하늘에서 온 거냐고, 어느 별에서 왔냐고요. 그 말에 문득 한 가지가 떠올라 되묻자, 아이는 대답 대신 비행기를 바라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런 걸 타고는 그리 멀리서 오지 못했을 거라고 중얼거리더니, 한참을 생각에 잠겼어요. 궁금증이 생겨 캐물었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집'은 어디인지, 양은 어디로 데려갈 셈인지. 깊은 생각 끝에 아이가 입을 열었어요. 상자가 좋은 건, 밤에는 양의 집이 되어준다는 점이라고요. 낮에 묶어둘 밧줄과 말뚝도 주겠다고 하자 아이는 충격받은 얼굴이었습니다. 묶어두지 않으면 아무 데나 가다 길을 잃을 거라 하자, "어디로 가겠어!" 아이는 다시 웃으며 되물었어요. "그냥 앞으로 곧장 걸어가겠지"하고 말하자, 아이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우리 별은 너무 작아." 그러고는 조금 쓸쓸한 투로 덧붙였어요. "곧장 가봐야, 그리 멀리는 못 가." 그렇게 아이가 온 별이 겨우 집 한 채 크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습니다. 지구나 화성처럼 이름 붙은 큰 행성 말고도, 망원경으로 겨우 보일 만큼 작은 별이 수백 개나 있고, 천문학자들은 그런 별을 발견하면 숫자로 이름을 붙이니까요. 이 아이가 온 별은 소행성 B-612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습니다. 1909년, 한 튀르키예 천문학자가 망원경으로 딱 한 번 관측한 별이었어요. 국제 천문학 회의에서 이 발견을 성대하게 발표했지만, 이국적인 옷차림 탓에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훗날 튀르키예의 한 독재자가 자국민에게 유럽식 정장을 입도록 명령하면서 소행성의 명예도 함께 회복되었어요. 1920년,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다시 발표석에 선 천문학자의 말은 그제야 모두가 믿어주었습니다. 이런 숫자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건 어른들의 습성 때문이에요. 새 친구를 사귀었다고 하면, 목소리가 어떤지 무슨 놀이를 좋아하는지 묻는 법이 없습니다. 대신 나이가 몇인지 몸무게는 얼마인지 아버지가 얼마를 버는지부터 묻고는, 그제야 그 친구를 안다고 여기지요. "창가에 제라늄이 피고 지붕엔 비둘기가 앉은 분홍빛 벽돌집을 봤어요"라고 말하면 전혀 상상하지 못하다가, "10만 프랑짜리 집을 봤어요"라고 해야 비로소 감탄하는 식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아이가 매력적이고 잘 웃고 양을 갖고 싶어 했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존재를 믿어주지 않을 어른들도, 소행성 B-612에서 왔다는 말 한마디엔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캐묻지 않을 거예요. 사실 이 이야기는 "옛날 옛적, 자기 몸보다 조금 큰 별에 살던 어린 왕자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친구가 필요했어요"라고 시작하는 편이 훨씬 더 진실하게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친구가 양을 데리고 떠난 지 벌써 6년, 그를 잊지 않으려 다시 그림물감과 색연필을 샀습니다. 아이를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려 봅니다. 그의 별과 여행에 대해서는 매일 조금씩 알아갔습니다. 그러던 사흘째 되던 날 알게 된 건 바오밥나무의 위협이었어요. 이번에도 양 덕분이었습니다. 양이 작은 나무를 먹는 게 맞느냐고 심각한 얼굴로 아이가 물었어요. 그렇다고 하자 안도하더니, 곧바로 바오밥나무도 먹겠느냐고 되물었습니다. 바오밥나무는 작은 나무가 아니라 교회만큼 거대해서, 코끼리 떼를 몰고 가도 한 그루조차 먹어치우지 못할 거라 일러주자 아이는 코끼리를 위로 차곡차곡 쌓으면 된다며 웃었어요. 하지만 이내 진지하게 바오밥나무도 크기 전엔 작은 새싹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별에도 좋은 풀과 나쁜 잡초가 뒤섞여 자랐습니다. 씨앗들은 보이지 않는 흙 속에 잠들어 있다가 때가 되면 조심스레 싹을 틔우는데, 무나 장미라면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해로운 식물이라면 알아보는 즉시 뽑아야 했어요. 그 별에는 바오밥나무 씨앗이 지천이었고, 조금만 늦어도 뿌리가 별 전체를 뚫고 들어가 결국 별을 산산조각 내버리니까요. 아이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아침마다 세수를 하듯 별도 정성껏 돌봐야 하고, 장미 싹과 아주 비슷해 보일 때 바오밥 싹을 구별해 뽑아내는 일은 지루하지만 아주 쉬운 일이라고 했어요. 어느 날 아이는 지구의 아이들도 이 위험을 알 수 있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게을러서 어린 나무 세 그루를 방치했던 별을 하나 안다면서요. 그 부탁대로 그린 그림이 이 책에서 가장 공들인 한 장이 되었어요. 평소라면 훈계조를 꺼리지만, 바오밥나무의 위험만큼은 너무 치명적이라 이번엔 예외를 둡니다. "아이들아, 바오밥나무를 조심해라."이렇게 어린 왕자는 자신이 떠나온 작은 별의 사정을 하나씩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사막 한가운데서 시작된 이 대화가 앞으로 어떤 별들, 어떤 어른들의 이야기로 이어지는지는 다음 화에서 계속됩니다. 📖 현대적 감각의 번역본 보러 가기
- Zipyears
- 14 Jul, 2026
일기장의 첫 문장,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 1984 줄거리 1화
회사 책상 앞에 카메라가 달려 있고, 화면 하나가 숨소리까지 하루 종일 지켜보고 있다면 어떨까요. 표정 하나 잘못 지으면 그게 곧바로 문제가 되고, 화장실 갈 때 말고는 그 시선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면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그 나라에서 아주 작은 반항을 시작하려고 합니다.13시를 치는 시계, 낯선 나라의 문 화창하지만 바람은 매섭게 찬 4월의 어느 날, 시계가 열세 번을 울립니다. 윈스턴은 그 바람을 피해 턱을 파묻은 채 걸음을 서둘러 빅토리 맨션의 유리문을 통과하지요. 로비에는 삶은 양배추와 낡은 깔개 냄새가 배어 있고, 벽에는 실내에 걸기엔 유난히 큰 포스터가 붙어 있습니다. 검은 콧수염을 기른 마흔다섯 살가량 남자의 얼굴인데, 어느 각도에서 봐도 눈길이 따라오도록 그려진 그림이지요. 그 아래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빅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증오 주간을 앞둔 절전 조치 때문에 엘리베이터는 낮 동안 아예 멈춰 있습니다. 서른아홉 살, 오른쪽 발목 위에 정맥류성 궤양을 안고 사는 윈스턴은 몇 번이나 쉬어가며 7층까지 걸어 올라가요. 집 안에 들어서자 돼지와 철 생산량을 읊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벽에 박힌 흐릿한 거울 같은 금속판, 방 한구석에 자리 잡은 텔레스크린이지요. 소리는 줄일 수 있어도 완전히 끌 방법은 없습니다. 네 개의 부처, 진실을 관리하는 사람들 창밖으로는 진리부의 새하얀 피라미드 건물이 보입니다. 300미터 높이로 솟은 그 벽면에는 당의 세 슬로건이 새겨져 있어요.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오세아니아에는 이 진리부 말고도 평화부(사실상 전쟁을 담당), 애정부(치안과 처벌을 담당), 풍요부(경제를 담당)까지 네 개의 부처가 있습니다. 이름과 실제 하는 일이 정반대라는 사실을 이 나라 사람들은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요. 증오가 흐르는 짧은 시간 사무실에서는 매일 의무적으로 '2분 증오'라는 시간이 돌아옵니다. 화면에 반역자 골드스타인의 얼굴이 뜨자마자 사람들은 저마다 야유와 비명을 쏟아내기 시작해요. 처음엔 어색하게 시작해도 채 30초가 지나기 전에,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방 전체를 휩쓸고 사람들은 어느새 집단적인 흥분 속으로 빠져듭니다. 윈스턴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 역시 발을 구르며 함께 소리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 소란 속에서 그는 두 사람을 의식합니다. 하나는 복도에서 스쳐 지날 때 사상경찰의 끄나풀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려운 날카로운 곁눈질을 던진 적 있는 짙은 색 머리의 여자예요. 다른 하나는 내부 당원 오브라이언. 두꺼운 목에 다부진 체격, 거친 인상이지만 이상하게도 세련된 몸짓을 지닌 남자지요. 군중 사이로 잠깐 눈이 마주쳤을 때, 윈스턴은 묘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 사람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물론 다음 순간 그 표정은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워졌지만요. 지워지지 않는 페이지 위의 첫 문장집으로 돌아온 윈스턴은 서랍에서 노트 한 권을 꺼냅니다. 빈민가의 허름한 골동품 가게 진열창에서 우연히 보고 2달러 50센트를 주고 산 것이었어요. 40년은 됐음 직한 크림색 종이는 요즘 만드는 종이와는 결이 다릅니다. 방 구조상 이 노트를 펴 놓은 자리만은 텔레스크린의 눈길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라는 걸, 그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요. 애초에 이 나라에는 법이라는 게 따로 없어서 일기를 쓰는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닙니다. 하지만 발각되면 사형, 아니면 최소 25년의 강제노동형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습니다. 펜에 잉크를 찍은 손이 잠시 멈칫하지요. 사각지대에 숨죽여 앉은 그는 자신도 무슨 말을 쓰려는지 모른 채 펜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빅브라더를 타도하라'는 문장을 페이지 가득 적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초인종 소리, 감시는 옆집에서도 같은 날 오후, 문 두드리는 소리에 윈스턴은 화들짝 놀랍니다. 이웃 파슨스 부인이 막힌 배수관 때문에 도움을 청해온 것이었어요. 집 안에서는 부모조차 감시의 대상으로 여기도록 자란 그녀의 두 아이가 윈스턴을 향해 장난감 총을 겨누며 "반역자! 사상범!"이라고 외칩니다. 놀이인지 진심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자연스러운 몸짓이에요. 이 나라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스파이단에 소속되어 훈련을 받고, 부모를 밀고해 신문에 "어린 영웅"으로 소개된 아이의 이야기가 자랑처럼 회자되곤 합니다. 윈스턴은 아이들의 서늘한 기세를 뒤로한 채 문을 닫고 돌아섭니다. 그리고 자신이 방금 낡은 노트에 적어 내려간 몇 마디가, 언젠가 저 아이들과 같은 감시의 눈에 의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는 사실을 직감합니다. 그렇게 되는 순간,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지워지는 기억, 지워지는 아버지 어제 쓴 보고서를 오늘 상사가 "그런 적 없다"며 처음부터 다시 쓰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그것도 하루도 빠짐없이, 회사 전체가 모두 같은 일을 반복한다면요. 윈스턴 스미스는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화에서 먼저 그를 찾아오는 건 일이 아니라, 오래전에 잃어버린 가족의 꿈이에요. 사라진 엄마, 남은 건 흐릿한 장면 몇 개 꿈속에서 윈스턴은 어머니를 만납니다. 그가 열 살이나 열한 살쯤 되었을 무렵, 어머니는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큰 키에 말수가 적고 몸짓은 느렸으며, 아름다운 금발을 지닌 여인이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더 희미합니다. 검고 마른 체형에 안경을 썼고, 늘 단정한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 정도만 떠오릅니다. 윈스턴은 두 사람 모두 1950년대 첫 대숙청 때 사라졌으리라 짐작할 뿐입니다. 꿈속에서 어머니는 갓난 여동생을 품에 안은 채 가라앉는 배의 선실처럼 깊은 곳에 있습니다. 윈스턴은 빛과 공기가 있는 위쪽에 있고, 어머니와 여동생은 녹색 물살이 이는 어두운 수면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습니다. 그들의 죽음이 자신을 살리기 위한 대가였다는 사실을 윈스턴은 꿈속에서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원망도, 원한도 없습니다. 그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떠나야 했다는 사실만이 조용히 남아 있을 뿐입니다. 황금의 나라, 꿈에서만 존재하는 풍경 꿈은 다른 풍경으로 이어집니다. 토끼가 뜯어먹은 낡은 목초지, 구불구불한 오솔길, 저 멀리 느릅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보여요. 그는 이 풍경을 '황금의 나라'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본 적이 있는 곳인지, 순전히 꿈에서만 존재하는 곳인지 이제는 그 자신도 확신하지 못해요. '황금의 나라'에 짙은 색 머리의 여자가 들판을 가로질러 걸어옵니다. 그녀는 단 한 번의 동작으로 옷을 벗어 던집니다. 그 몸짓에는 어떤 우아함이 담겨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웃음은 빅브라더와 당, 사상경찰까지도 모두 무너뜨릴 수 있을 것만 같은 힘으로 다가옵니다. 윈스턴은 '셰익스피어'라는 낯선 이름을 중얼거리며 잠에서 깨어납니다. 아침 체조도 텔레스크린 앞에서 07시 15분, 기상을 알리는 텔레스크린의 날카로운 신호음이 울려 퍼집니다. 외부 당원에게 지급되는 연간 의류 쿠폰은 3,000장뿐입니다. 잠옷 한 벌만 해도 600장을 써야 했기에 윈스턴은 벌거벗은 채 잠에서 깹니다. 화면 속 여성 교관이 "30~40세 그룹!"을 외치며 체조를 시작시킵니다. 얼굴에는 반드시 즐기는 표정을 지어야 합니다. 폐를 찢는 듯한 기침과 궤양이 욱신거리는 통증을 견디며 팔을 뻗고 굽히는 동안 그는 애써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 이전의 기억은 안개처럼 희미하기만 합니다. 기록이 남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기억마저 형체를 잃고 흩어진다는 사실을 그는 이 순간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발끝에 손을 대는 동작에 이르자, 텔레스크린이 갑자기 그의 이름을 부릅니다. "스미스! 6079 스미스 W! 그래, 너 말이야! 더 숙여!" 윈스턴은 얼굴을 무표정하게 굳힙니다. 놀람도, 억울함도 눈빛 하나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관은 자신이 서른아홉 살에 아이 넷을 낳고도 이만큼 유연하다며 직접 시범을 보입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윈스턴은 무릎을 굽히지 않은 채 손끝을 발끝에 닿게 하는 데 성공합니다. 공기수송관 속 원통, 그 안의 "정정 지시"출근한 윈스턴은 진리부 기록국 자기 자리에서 스피크라이트를 끌어당깁니다. 벽에 뚫린 공기수송관에서는 쉴 새 없이 종이 원통이 튀어나와요. 안에는 지시문이 들어 있습니다. 어느 날짜 타임스 기사의 어느 문장을 "정정"하라는 것입니다. 그의 일은 사실을 조사하는 게 아니라, 이미 벌어진 과거를 당의 현재 입장에 맞게 다시 쓰는 것입니다. 수정이 끝난 원본은 벽에 뚫린 관, '기억통로'로 던져 넣으면 그것으로 끝이에요. 소각로로 직행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존재한 적 없는 영웅, 오길비 동지의 탄생 그날 그에게 배정된 일 중 하나는 조금 특별했습니다. 최근 전투에서 영웅적으로 전사했다는 오길비 동지에 관한 기사를 손보는 일이었는데, 문제는 오길비라는 사람이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윈스턴은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이 인물을 체제에 목숨을 바친 역사적 영웅으로 조용히 지어냅니다. 세 살 때부터 장난감 대신 드럼과 기관단총 모형만 가지고 놀았다는 설정에 금욕적이고 헌신적인 삶까지 더해 기사를 써 내려갑니다. 훈장을 줄지도 잠시 고민하지만, 괜히 절차만 늘어난다는 생각에 그만두기로 해요. 원고를 기억통로에 넣는 순간, 오길비 동지는 샤를마뉴나 율리우스 카이사르만큼이나 확실하게 "존재했던" 사람이 됩니다. 윈스턴은 문득 이 나라의 역사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결정적인 물증을 손에 쥔 적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그는 이제 일부러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두려 합니다.존재한 적 없는 영웅을 만들어낸 손으로, 윈스턴은 다음 화에서 지워진 과거의 물증 하나를 다시 떠올립니다. 📖 처음 읽는다면 이 번역본을 추천합니다.
- Zipyears
- 10 Jul, 2026
진리를 향한 두 번의 결별 — 싯다르타 줄거리 1화
싯다르타는 브라만 사제의 아들로 태어나 풍요롭고 평화로운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총명한 눈빛과 단정한 걸음걸이만으로도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부모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자랑이었어요. 곁에는 늘 고빈다가 있었습니다. 그는 싯다르타의 걸음 하나, 말 한마디까지 사랑했고, 언젠가 친구가 특별한 존재가 되는 날이 오면 그림자처럼 뒤따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모든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싯다르타 자신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몸을 씻는 정결례도, 제사의 향도, 아버지의 가르침도 그의 목마름을 채워주지 못했지요. 심지어 그가 가장 존경하던 아버지조차, 그토록 많이 알면서도 여전히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배움이라는 것이, 정말 자신이 찾는 것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을 지나가는 세 사람을 보게 됩니다. 먼지와 피로 얼룩진 어깨에, 뼈만 남은 몸으로 세상과 인연을 끊은 듯 걷는 고행자, 사문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몸에서 풍기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결연함이었고, 싯다르타는 그 뒷모습을 보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직감합니다.그날 저녁 그는 아버지 앞에 서서 사문이 되어 집을 떠나고 싶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오래도록 침묵하다가, 낮지만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러자 싯다르타는 대꾸 대신 팔짱을 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섭니다. 마치 대답을 대신하듯이요. 밤이 깊어지고, 아버지는 잠들지 못한 채 몇 번이고 방을 들여다봅니다. 첫 번째 시간에도, 두 번째 시간에도 아들은 미동조차 없이 서 있었습니다. 화가 치밀다가도 근심이 되고, 근심은 다시 슬픔으로 바뀌어 갔지요. 아버지는 물었습니다. "그렇게 밤이 새도록 서서 기다릴 셈이냐." 싯다르타는 짧게 답할 뿐이었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밤이 다 지나고 첫 새벽빛이 방 안으로 스며들 무렵, 아버지는 아들의 무릎이 가볍게 떨리고 있는 것을 알아챕니다. 그런데 얼굴만큼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두 눈은 여전히 먼 곳 어딘가를 향해 있었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는 아들의 몸은 아직 이 방에 있지만, 그 영혼은 이미 이 집을 떠났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붙잡지 않았습니다. 이미 떠난 사람을 붙드는 일이 부질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겁니다. 대신 그곳에서 행복을 찾거든 돌아와 나에게도 가르쳐 달라고 말했습니다.이른 아침, 안개가 채 걷히기도 전에 싯다르타가 마을을 나설 때, 마지막 오두막 곁에 웅크려 있던 그림자 하나가 조용히 일어나 뒤를 따릅니다. 고빈다였습니다. 사문의 무리에 합류한 싯다르타는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습니다. 옷 한 벌만 걸친 채 보름씩, 스무여드레씩 곡기를 끊었고, 몸은 점점 야위어 갔습니다. 그가 바란 것은 단 하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비워지는 일이었습니다. 슬픔도 기쁨도, 갈망도 남지 않은 텅 빈 마음이 되면, 그 너머에서 진짜 자신이 깨어날 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명상 속에서 날아가는 백로의 몸으로 들어가 함께 날았고, 모래밭에 버려진 자칼의 사체 속으로도 스며들어 그것이 썩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느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다른 존재가 되어보아도, 눈을 뜨면 어김없이 다시 싯다르타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벗어났다고 믿는 순간마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 굴레가, 그를 조금씩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싯다르타는 여기서 하나의 통찰에 이릅니다. 사문들의 고행이라는 것도, 결국 소달구지를 모는 이가 술 몇 잔으로 잠시 고단함을 잊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었어요. 잠깐의 마비일 뿐, 거기서 돌아오면 세상은 조금도 달라져 있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평생을 수행에 바친 가장 나이 많은 사문조차 여전히 열반에 이르지 못한 모습을 보며, 그는 확신하게 됩니다. 배우려는 마음, 그 갈망 자체가 오히려 진리에서 자신을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요. 그 무렵 마을에는 한 가지 소문이 퍼지고 있었습니다. 윤회의 고리를 끊고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사람, 고타마라는 이름의 붓다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고빈다는 그 소식에 마음이 부풀었지만, 싯다르타는 여전히 담담했습니다. 다만 이 소문을 계기로, 오래 걸어온 사문의 길을 미련 없이 접기로 마음먹습니다. 두 사람이 떠난다는 말을 들은 가장 나이 많은 사문은 크게 노하며 거친 말을 쏟아냈습니다. 그러자 싯다르타는 조용히 그의 눈을 응시했습니다. 오랜 수행으로 벼려온 집중력으로, 노인의 의지를 그 자리에서 얼어붙게 만든 것입니다. 말도, 손짓도 멈춘 늙은 사문은 결국 더듬거리며 두 사람의 앞길을 축복하고 말았습니다. 싯다르타에게는 사문들이 추구하는 물 위를 걷는 것과 같은 신묘한 기적 따위는 애초에 관심 밖의 일이었습니다. 그가 원한 것은 놀라운 재주가 아니라, 자신이 정말로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는 어떤 진실이었으니까요.그렇게 두 청년은 고타마가 있다는 곳을 향해, 다시 새로운 길 위에 발을 내디딥니다. ☕ 독서 후 한 잔, 8가지 여운을 담은 일킬로 드립백 커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