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한 마리만 그려줘 — 어린 왕자 줄거리 1화
- Zipyears
- 20 Jul, 2026
1부. 사막에서, 어린 왕자를 만나다
부제: 양 한 마리만 그려줘
사하라 사막 한복판,
엔진이 멈춘 비행기 곁에서 한 남자가 낯선 목소리에 잠을 깹니다.
“양 한 마리만 그려줘.”
물도 길잡이도 없이 죽음과 마주한 그 밤,
이렇게 시작된 만남이 훗날 가장 이상하고도 가장 잊을 수 없는 우정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1화. 사막에서 만난 이상한 부탁
여섯 살 무렵,
원시림에 관한 책에서 본 그림 하나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보아뱀이 짐승을 통째로 삼키고 여섯 달 동안 꼼짝없이 소화만 시킨다는 대목이었어요.
그 장면이 궁금해 색연필로 첫 그림을 그렸는데,
어른들에게 보여주자 돌아온 대답은 하나같이 “모자”였습니다.
사실 그 그림은 모자가 아니라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었어요.
답답한 마음에 이번엔 뱀 속을 그대로 그려 보여줬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어른들은 그림 대신 지리와 역사, 산수와 문법을 배우라고 했고,
그렇게 여섯 살에 화가의 꿈을 접었어요.
어른들은 언제나 설명을 들어야만 이해했고, 아이에게는 그것이 참 피곤한 일이었어요.
화가 대신 조종사가 되어 세계를 날아다니게 됐을 때, 뜻밖에도 그 지리 지식이 쓸모가 있었어요.
길을 잃어도 그곳이 중국인지 애리조나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으니까요.
살면서 제법 똑똑해 보이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간직해온 그림을 보여줬지만, 대답은 늘 같았습니다.
“이건 모자군요.”
그 뒤로는 보아뱀도 원시림도 별 이야기도 꺼내지 않고,
브리지와 골프와 정치와 넥타이 이야기만 나눴어요.
어른들은 그런 사람을 상식적이라며 반겼습니다.
그렇게 혼자 지내던 6년 전,
사하라 사막에서 엔진이 고장 났어요.
정비사도 동승자도 없이, 겨우 여드레치 물만 지닌 채였습니다.
첫날 밤 사람 사는 곳에서 천 마일 떨어진 모래 위에서 잠들었으니, 뗏목에 매달린 조난자보다도 고립된 처지였던 셈이에요.
새벽녘,
낯선 목소리가 잠을 깨웠습니다.

“양 한 마리만 그려줘…” 눈을 떠보니 처음 보는 아이가 진지한 얼굴로 서 있었어요.
길을 잃거나 지치거나 겁에 질린 기색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이 상황이 너무 신비로워 차마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어요.
그림이라곤 보아뱀뿐이라 그것부터 다시 그렸더니 아이는 딱 잘라 거절했습니다.
내가 사는 별은 아주 작아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양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벌써 병들었잖아” 하며 퇴짜를 놓았고, 다시 그려도 같은 반응이었어요.
다음 그림엔 뿔이 있다며 숫양이라고 웃었고,
그다음엔 너무 늙었다며 오래 사는 양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엔진 수리가 급했던 터라 인내심이 바닥나, 상자 하나를 대충 그려 툭 내밀었어요.

“이게 상자야. 네가 원하는 양은 이 안에 있어.” 아이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딱 원하던 거라며, 그 양에게 풀이 많이 필요하겠느냐고 물었어요.
집이 워낙 좁으니 넉넉할 거라 답하자,
아이는 그림 쪽으로 고개를 숙이더니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렇게 작지도 않네… 봐, 벌써 잠들었어.”
그렇게 어린 왕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대체 어디서 온 걸까요.
2화. 집보다 작은 별에서 온 아이
비행기에 관한 질문 하나로, 이 아이가 하늘에서 왔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질문은 늘 아이의 몫이었고, 되묻는 물음에는 좀처럼 대답하지 않았어요.
무심코 흘린 말들이 쌓이고 나서야 아이가 어디서 왔는지 조금씩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를 처음 본 날,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건 뭐냐고 물었어요.
조종사라는 사실이 내심 뿌듯해 날아다니는 내 비행기라고 말하자,
아이가 외쳤습니다. “그럼 하늘에서 떨어졌겠네!”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는 맑은 웃음을 터뜨렸어요.
불행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주길 바랐던 입장에서는 그 웃음이 못내 거슬렸습니다.
그러더니 아이가 되물었어요.
그럼 당신도 하늘에서 온 거냐고, 어느 별에서 왔냐고요.
그 말에 문득 한 가지가 떠올라 되묻자,
아이는 대답 대신 비행기를 바라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런 걸 타고는 그리 멀리서 오지 못했을 거라고 중얼거리더니, 한참을 생각에 잠겼어요.
궁금증이 생겨 캐물었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집’은 어디인지, 양은 어디로 데려갈 셈인지.
깊은 생각 끝에 아이가 입을 열었어요.
상자가 좋은 건, 밤에는 양의 집이 되어준다는 점이라고요.
낮에 묶어둘 밧줄과 말뚝도 주겠다고 하자 아이는 충격받은 얼굴이었습니다.
묶어두지 않으면 아무 데나 가다 길을 잃을 거라 하자,
“어디로 가겠어!” 아이는 다시 웃으며 되물었어요.
“그냥 앞으로 곧장 걸어가겠지”하고 말하자,
아이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우리 별은 너무 작아.”
그러고는 조금 쓸쓸한 투로 덧붙였어요.
“곧장 가봐야, 그리 멀리는 못 가.”
그렇게 아이가 온 별이 겨우 집 한 채 크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습니다.
지구나 화성처럼 이름 붙은 큰 행성 말고도,
망원경으로 겨우 보일 만큼 작은 별이 수백 개나 있고,
천문학자들은 그런 별을 발견하면 숫자로 이름을 붙이니까요.
이 아이가 온 별은 소행성 B-612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습니다.
1909년, 한 튀르키예 천문학자가 망원경으로 딱 한 번 관측한 별이었어요.
국제 천문학 회의에서 이 발견을 성대하게 발표했지만, 이국적인 옷차림 탓에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훗날 튀르키예의 한 독재자가 자국민에게 유럽식 정장을 입도록 명령하면서 소행성의 명예도 함께 회복되었어요.
1920년,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다시 발표석에 선 천문학자의 말은 그제야 모두가 믿어주었습니다.
이런 숫자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건 어른들의 습성 때문이에요.
새 친구를 사귀었다고 하면, 목소리가 어떤지 무슨 놀이를 좋아하는지 묻는 법이 없습니다.
대신 나이가 몇인지 몸무게는 얼마인지 아버지가 얼마를 버는지부터 묻고는,
그제야 그 친구를 안다고 여기지요.
“창가에 제라늄이 피고 지붕엔 비둘기가 앉은 분홍빛 벽돌집을 봤어요”라고 말하면 전혀 상상하지 못하다가,
“10만 프랑짜리 집을 봤어요”라고 해야 비로소 감탄하는 식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아이가 매력적이고 잘 웃고 양을 갖고 싶어 했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존재를 믿어주지 않을 어른들도,
소행성 B-612에서 왔다는 말 한마디엔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캐묻지 않을 거예요.
사실 이 이야기는 “옛날 옛적, 자기 몸보다 조금 큰 별에 살던 어린 왕자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친구가 필요했어요”라고 시작하는 편이 훨씬 더 진실하게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친구가 양을 데리고 떠난 지 벌써 6년,
그를 잊지 않으려 다시 그림물감과 색연필을 샀습니다.
아이를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려 봅니다.
그의 별과 여행에 대해서는 매일 조금씩 알아갔습니다.
그러던 사흘째 되던 날 알게 된 건 바오밥나무의 위협이었어요.
이번에도 양 덕분이었습니다.
양이 작은 나무를 먹는 게 맞느냐고 심각한 얼굴로 아이가 물었어요.
그렇다고 하자 안도하더니,
곧바로 바오밥나무도 먹겠느냐고 되물었습니다.
바오밥나무는 작은 나무가 아니라 교회만큼 거대해서, 코끼리 떼를 몰고 가도 한 그루조차 먹어치우지 못할 거라 일러주자 아이는 코끼리를 위로 차곡차곡 쌓으면 된다며 웃었어요.
하지만 이내 진지하게 바오밥나무도 크기 전엔 작은 새싹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별에도 좋은 풀과 나쁜 잡초가 뒤섞여 자랐습니다.
씨앗들은 보이지 않는 흙 속에 잠들어 있다가 때가 되면 조심스레 싹을 틔우는데,
무나 장미라면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해로운 식물이라면 알아보는 즉시 뽑아야 했어요.
그 별에는 바오밥나무 씨앗이 지천이었고,
조금만 늦어도 뿌리가 별 전체를 뚫고 들어가 결국 별을 산산조각 내버리니까요.
아이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아침마다 세수를 하듯 별도 정성껏 돌봐야 하고,
장미 싹과 아주 비슷해 보일 때 바오밥 싹을 구별해 뽑아내는 일은 지루하지만 아주 쉬운 일이라고 했어요.
어느 날 아이는 지구의 아이들도 이 위험을 알 수 있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게을러서 어린 나무 세 그루를 방치했던 별을 하나 안다면서요.
그 부탁대로 그린 그림이 이 책에서 가장 공들인 한 장이 되었어요.
평소라면 훈계조를 꺼리지만, 바오밥나무의 위험만큼은 너무 치명적이라 이번엔 예외를 둡니다.
“아이들아, 바오밥나무를 조심해라.”
이렇게 어린 왕자는 자신이 떠나온 작은 별의 사정을 하나씩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사막 한가운데서 시작된 이 대화가 앞으로 어떤 별들, 어떤 어른들의 이야기로 이어지는지는 다음 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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