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의 첫 문장,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 1984 줄거리 1화

회사 책상 앞에 카메라가 달려 있고,

화면 하나가 숨소리까지 하루 종일 지켜보고 있다면 어떨까요.

표정 하나 잘못 지으면 그게 곧바로 문제가 되고,

화장실 갈 때 말고는 그 시선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면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그 나라에서 아주 작은 반항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13시를 치는 시계, 낯선 나라의 문

화창하지만 바람은 매섭게 찬 4월의 어느 날, 시계가 열세 번을 울립니다.

윈스턴은 그 바람을 피해 턱을 파묻은 채 걸음을 서둘러 빅토리 맨션의 유리문을 통과하지요.

로비에는 삶은 양배추와 낡은 깔개 냄새가 배어 있고,

벽에는 실내에 걸기엔 유난히 큰 포스터가 붙어 있습니다.

검은 콧수염을 기른 마흔다섯 살가량 남자의 얼굴인데, 어느 각도에서 봐도 눈길이 따라오도록 그려진 그림이지요.

그 아래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빅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증오 주간을 앞둔 절전 조치 때문에 엘리베이터는 낮 동안 아예 멈춰 있습니다.

서른아홉 살,

오른쪽 발목 위에 정맥류성 궤양을 안고 사는 윈스턴은 몇 번이나 쉬어가며 7층까지 걸어 올라가요.

집 안에 들어서자 돼지와 철 생산량을 읊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벽에 박힌 흐릿한 거울 같은 금속판, 방 한구석에 자리 잡은 텔레스크린이지요.

소리는 줄일 수 있어도 완전히 끌 방법은 없습니다.

네 개의 부처, 진실을 관리하는 사람들

창밖으로는 진리부의 새하얀 피라미드 건물이 보입니다.

300미터 높이로 솟은 그 벽면에는 당의 세 슬로건이 새겨져 있어요.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오세아니아에는 이 진리부 말고도 평화부(사실상 전쟁을 담당), 애정부(치안과 처벌을 담당), 풍요부(경제를 담당)까지 네 개의 부처가 있습니다.

이름과 실제 하는 일이 정반대라는 사실을 이 나라 사람들은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요.

증오가 흐르는 짧은 시간

사무실에서는 매일 의무적으로 ‘2분 증오’라는 시간이 돌아옵니다.

화면에 반역자 골드스타인의 얼굴이 뜨자마자 사람들은 저마다 야유와 비명을 쏟아내기 시작해요.

처음엔 어색하게 시작해도 채 30초가 지나기 전에,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방 전체를 휩쓸고 사람들은 어느새 집단적인 흥분 속으로 빠져듭니다.

윈스턴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 역시 발을 구르며 함께 소리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 소란 속에서 그는 두 사람을 의식합니다.

하나는 복도에서 스쳐 지날 때 사상경찰의 끄나풀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려운 날카로운 곁눈질을 던진 적 있는 짙은 색 머리의 여자예요.

다른 하나는 내부 당원 오브라이언.

두꺼운 목에 다부진 체격, 거친 인상이지만 이상하게도 세련된 몸짓을 지닌 남자지요.

군중 사이로 잠깐 눈이 마주쳤을 때, 윈스턴은 묘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 사람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물론 다음 순간 그 표정은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워졌지만요.

지워지지 않는 페이지 위의 첫 문장

지워지지 않는 페이지 위의 첫 문장

집으로 돌아온 윈스턴은 서랍에서 노트 한 권을 꺼냅니다.

빈민가의 허름한 골동품 가게 진열창에서 우연히 보고 2달러 50센트를 주고 산 것이었어요.

40년은 됐음 직한 크림색 종이는 요즘 만드는 종이와는 결이 다릅니다.

방 구조상 이 노트를 펴 놓은 자리만은 텔레스크린의 눈길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라는 걸, 그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요.

애초에 이 나라에는 법이라는 게 따로 없어서 일기를 쓰는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닙니다.

하지만 발각되면 사형, 아니면 최소 25년의 강제노동형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습니다.

펜에 잉크를 찍은 손이 잠시 멈칫하지요.

사각지대에 숨죽여 앉은 그는 자신도 무슨 말을 쓰려는지 모른 채 펜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빅브라더를 타도하라’는 문장을 페이지 가득 적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초인종 소리, 감시는 옆집에서도

같은 날 오후, 문 두드리는 소리에 윈스턴은 화들짝 놀랍니다.

이웃 파슨스 부인이 막힌 배수관 때문에 도움을 청해온 것이었어요.

집 안에서는 부모조차 감시의 대상으로 여기도록 자란 그녀의 두 아이가 윈스턴을 향해 장난감 총을 겨누며 “반역자! 사상범!”이라고 외칩니다.

놀이인지 진심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자연스러운 몸짓이에요.

이 나라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스파이단에 소속되어 훈련을 받고,

부모를 밀고해 신문에 “어린 영웅”으로 소개된 아이의 이야기가 자랑처럼 회자되곤 합니다.

윈스턴은 아이들의 서늘한 기세를 뒤로한 채 문을 닫고 돌아섭니다.

그리고 자신이 방금 낡은 노트에 적어 내려간 몇 마디가, 언젠가 저 아이들과 같은 감시의 눈에 의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는 사실을 직감합니다.

그렇게 되는 순간,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지워지는 기억, 지워지는 아버지

어제 쓴 보고서를 오늘 상사가 “그런 적 없다”며 처음부터 다시 쓰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그것도 하루도 빠짐없이, 회사 전체가 모두 같은 일을 반복한다면요.

윈스턴 스미스는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화에서 먼저 그를 찾아오는 건 일이 아니라,

오래전에 잃어버린 가족의 꿈이에요.

사라진 엄마, 남은 건 흐릿한 장면 몇 개

꿈속에서 윈스턴은 어머니를 만납니다.

그가 열 살이나 열한 살쯤 되었을 무렵, 어머니는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큰 키에 말수가 적고 몸짓은 느렸으며, 아름다운 금발을 지닌 여인이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더 희미합니다.

검고 마른 체형에 안경을 썼고, 늘 단정한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 정도만 떠오릅니다.

윈스턴은 두 사람 모두 1950년대 첫 대숙청 때 사라졌으리라 짐작할 뿐입니다.

꿈속에서 어머니는 갓난 여동생을 품에 안은 채 가라앉는 배의 선실처럼 깊은 곳에 있습니다.

윈스턴은 빛과 공기가 있는 위쪽에 있고,

어머니와 여동생은 녹색 물살이 이는 어두운 수면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습니다.

그들의 죽음이 자신을 살리기 위한 대가였다는 사실을 윈스턴은 꿈속에서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원망도, 원한도 없습니다.

그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떠나야 했다는 사실만이 조용히 남아 있을 뿐입니다.

황금의 나라, 꿈에서만 존재하는 풍경

꿈은 다른 풍경으로 이어집니다.

토끼가 뜯어먹은 낡은 목초지, 구불구불한 오솔길, 저 멀리 느릅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보여요.

그는 이 풍경을 ‘황금의 나라’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본 적이 있는 곳인지, 순전히 꿈에서만 존재하는 곳인지 이제는 그 자신도 확신하지 못해요.

‘황금의 나라’에 짙은 색 머리의 여자가 들판을 가로질러 걸어옵니다.

그녀는 단 한 번의 동작으로 옷을 벗어 던집니다.

그 몸짓에는 어떤 우아함이 담겨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웃음은 빅브라더와 당, 사상경찰까지도 모두 무너뜨릴 수 있을 것만 같은 힘으로 다가옵니다.

윈스턴은 ‘셰익스피어’라는 낯선 이름을 중얼거리며 잠에서 깨어납니다.

아침 체조도 텔레스크린 앞에서

07시 15분,

기상을 알리는 텔레스크린의 날카로운 신호음이 울려 퍼집니다.

외부 당원에게 지급되는 연간 의류 쿠폰은 3,000장뿐입니다.

잠옷 한 벌만 해도 600장을 써야 했기에 윈스턴은 벌거벗은 채 잠에서 깹니다.

화면 속 여성 교관이 “30~40세 그룹!”을 외치며 체조를 시작시킵니다.

얼굴에는 반드시 즐기는 표정을 지어야 합니다.

폐를 찢는 듯한 기침과 궤양이 욱신거리는 통증을 견디며 팔을 뻗고 굽히는 동안 그는 애써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 이전의 기억은 안개처럼 희미하기만 합니다.

기록이 남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기억마저 형체를 잃고 흩어진다는 사실을 그는 이 순간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발끝에 손을 대는 동작에 이르자, 텔레스크린이 갑자기 그의 이름을 부릅니다.

“스미스! 6079 스미스 W! 그래, 너 말이야! 더 숙여!”

윈스턴은 얼굴을 무표정하게 굳힙니다.

놀람도, 억울함도 눈빛 하나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관은 자신이 서른아홉 살에 아이 넷을 낳고도 이만큼 유연하다며 직접 시범을 보입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윈스턴은 무릎을 굽히지 않은 채 손끝을 발끝에 닿게 하는 데 성공합니다.

공기수송관 속 원통, 그 안의 “정정 지시”

정정 지시를 확인하는 윈스턴

출근한 윈스턴은 진리부 기록국 자기 자리에서 스피크라이트를 끌어당깁니다.

벽에 뚫린 공기수송관에서는 쉴 새 없이 종이 원통이 튀어나와요.

안에는 지시문이 들어 있습니다.

어느 날짜 타임스 기사의 어느 문장을 “정정”하라는 것입니다.

그의 일은 사실을 조사하는 게 아니라,

이미 벌어진 과거를 당의 현재 입장에 맞게 다시 쓰는 것입니다.

수정이 끝난 원본은 벽에 뚫린 관, ‘기억통로’로 던져 넣으면 그것으로 끝이에요.

소각로로 직행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존재한 적 없는 영웅, 오길비 동지의 탄생

그날 그에게 배정된 일 중 하나는 조금 특별했습니다.

최근 전투에서 영웅적으로 전사했다는 오길비 동지에 관한 기사를 손보는 일이었는데,

문제는 오길비라는 사람이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윈스턴은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이 인물을 체제에 목숨을 바친 역사적 영웅으로 조용히 지어냅니다.

세 살 때부터 장난감 대신 드럼과 기관단총 모형만 가지고 놀았다는 설정에 금욕적이고 헌신적인 삶까지 더해 기사를 써 내려갑니다.

훈장을 줄지도 잠시 고민하지만, 괜히 절차만 늘어난다는 생각에 그만두기로 해요.

원고를 기억통로에 넣는 순간,

오길비 동지는 샤를마뉴나 율리우스 카이사르만큼이나 확실하게 “존재했던” 사람이 됩니다.

윈스턴은 문득 이 나라의 역사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결정적인 물증을 손에 쥔 적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그는 이제 일부러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두려 합니다.


존재한 적 없는 영웅을 만들어낸 손으로, 윈스턴은 다음 화에서 지워진 과거의 물증 하나를 다시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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