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거짓말 뒤에 숨겨진 진심 — 위대한 개츠비 줄거리 4화

4화. 개츠비라는 남자

해안가 마을에 교회 종소리가 울리던 어느 일요일 아침,

세상 사람들과 그 정부(情婦)들이 다시 개츠비의 저택으로 돌아와 잔디밭 위에서 명랑하게 반짝였다.

“밀주업자래.” 젊은 여자들이 그의 칵테일과 꽃 사이를 오가며 수군거렸다.

“폰 힌덴부르크의 조카이자 악마의 육촌뻘 된다는 걸 알아낸 남자를 죽인 적도 있다더라.”

언젠가 나는 그해 여름 개츠비의 집을 다녀간 이들의 이름을 낡은 기차 시간표 여백에 적어둔 일이 있다.

빛바랜 이름들은 지금도 또렷이 읽히는데, 개츠비의 환대를 누리면서도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 하지 않았던 이들이 누구였는지를 보여준다.

이스트에그에서는 체스터 베커 부부와 리치 부부, 지난여름 메인주에서 익사한 웹스터 시빗 박사가 왔다.

다가오는 사람마다 염소처럼 코를 치켜드는 블랙벅 일가는 늘 한구석에 모여 있었고,

어느 겨울 오후 별 이유 없이 머리가 새하얗게 셌다는 에드거 비버도 있었다.

클래런스 엔다이브는 흰 승마바지 차림으로 딱 한 번 왔다가 정원에서 부랑자와 싸움을 벌였다.

리플리 스넬은 교도소에 가기 사흘 전 여기 왔는데, 어찌나 취했던지 율리시스 스웨트 부인의 차에 오른손이 깔리고 말았다.

웨스트에그에서는 필름스 파 엑설런스를 소유한 뉴턴 오키드를 비롯해 영화 쪽과 어떻게든 연이 닿은 사람들이 왔다.

그리고 타임스스퀘어의 지하철로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헨리 L. 팔메토도 있었다.


개츠비의 화려한 자동차와 질주

7월 말 어느 아침 아홉 시,

개츠비의 화려한 차가 우리 집 자갈길로 요란하게 들어서더니 경적을 울렸다.

“좋은 아침, 형씨. 오늘 나랑 점심 먹자고 데리러 왔지.”

한 달 사이 예닐곱 번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는 실망스러울 만큼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웨스트에그 마을에 닿기도 전에 그는 우아하던 말끝을 흐리기 시작하더니 캐러멜색 정장의 무릎을 초조하게 두드렸다.

“저기, 형씨.” 그가 불쑥 물었다.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당황한 나는 애매한 답을 얼버무렸다.

“내 인생 얘기를 좀 해줄게.” 그가 말을 끊었다.

“이런저런 소문 때문에 당신이 나를 오해하는 게 싫어서 말이야.

신께 맹세코 사실만 말할게.

나는 중서부의 부유한 집안 자식인데, 지금은 다들 돌아가셨어.

미국에서 자랐지만 옥스퍼드에서 교육받았지.

우리 집안 남자들은 대대로 그곳에서 교육받았거든.”

그는 나를 곁눈질했다. 그 순간 조던 베이커가 왜 그를 거짓말쟁이라 여겼는지 알 것 같았다.

“옥스퍼드에서 교육받았어”라는 말을 그는 마치 전에도 이 대목에서 걸려본 적 있는 사람처럼 서둘러 삼켰다.

“중서부 어디요?” 나는 무심한 척 물었다.

“샌프란시스코.”

“그렇군요.”

“가족이 다 죽고 나서 큰돈이 굴러들어 왔어.” 갑작스러운 몰락의 기억이 아직도 그를 무겁게 짓누르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 뒤로 나는 유럽의 모든 수도에서 젊은 라자처럼 살았지. 파리, 베니스, 로마.

보석을 모았어, 주로 루비를. 큰 사냥도 하고 그림도 좀 그렸어.

순전히 나 자신을 위해서, 오래전 있었던 슬픈 일을 잊으려고 말이야.”

“그러다 전쟁이 났어, 형씨. 오히려 마음이 놓이더군. 죽으려고 갖은 애를 썼는데 이상하게 목숨은 붙어 있었어.

전쟁 초반에 중위로 임관했지.

아르곤 숲에서는 기관총 대대 잔여 병력을 너무 멀리까지 진격시키는 바람에 양옆으로 반 마일씩 보병이 따라오지 못하는 틈이 생겼어.

우리는 루이스 기관총 16정에 병력 130명으로 그 자리에서 이틀 밤낮을 버텼지.

한참 뒤 보병이 도착했을 때는 시체 더미 속에서 독일군 세 개 사단의 휘장이 나왔다더군.

나는 소령으로 진급했고, 연합국 정부마다 훈장을 줬어. 심지어 아드리아해의 그 작은 몬테네그로에서까지!”

작은 몬테네그로! 그는 그 말을 애정을 담아 들어 올리듯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머니에서 리본 달린 금속 조각을 꺼내 내 손바닥에 떨어뜨렸다.

“몬테네그로에서 받은 거야.”

놀랍게도 진짜처럼 보였다.

“오르디네 디 다닐로 — 몬테네그로, 니콜라스 왕”이라는 글자가 원형으로 새겨져 있었다.

“뒤집어봐.”

“제이 개츠비 소령, 비범한 용맹을 기려.” 라고 쓰여 있었다.

“이것도 늘 갖고 다니는 거야. 옥스퍼드 시절 기념품, 트리니티 쿼드에서 찍었지.” 블레이저 차림의 청년 여섯 명이 첨탑들이 보이는 아치 아래 느긋하게 서 있는 사진이었다. 그중에 크리켓 배트를 든, 지금보다 조금 젊은 개츠비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게 사실이었다.

나는 그랜드 커낼의 궁전에 걸린 호랑이 가죽을, 부서진 마음을 달래려 붉게 빛나는 루비 상자를 여는 그를 눈앞에 그려보았다.

“오늘 큰 부탁을 하나 하려고 해.” 그가 기념품들을 만족스럽게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 얘기를 먼저 해두는 게 낫겠다 싶었지. 오늘 오후에 듣게 될 거야. 마침 당신이 베이커 양이랑 차를 마시기로 했다더군.”

우리는 재의 계곡을 지났다. 정비소 펌프 앞에 지친 몸을 기대고 있는 윌슨 부인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경찰 오토바이가 따라붙자 개츠비는 지갑에서 하얀 카드를 꺼내 흔들어 보였다.

“그렇군요.” 경찰이 모자를 살짝 들며 말했다. “다음엔 알아뵙겠습니다, 개츠비 씨. 실례했습니다!”

점심 자리에서 그는 마이어 울프심이라는 남자를 소개했다.

코가 납작한 작은 체구의 유대인이었다.

소맷단추를 유심히 보는 나에게 그는 그것이 “가장 훌륭한 사람 어금니 표본들”이라고 태연히 말했다.

대화 도중 개츠비는 이 사람이 1919년 월드시리즈를 조작한 바로 그 인물이라고 담담히 알려주었다.

오천만 명의 믿음을 가지고 장난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좀처럼 실감 나지 않았다.

식당을 나서다 톰 뷰캐넌과 마주쳤다.

그 순간 개츠비의 얼굴빛이 살짝 변하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과거의 데이지와 개츠비

그날 오후 나는 조던과 함께 플라자 호텔의 티가든에 앉았다.

조던은 꼿꼿한 자세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1917년, 열여덟 살의 데이지 페이는 루이빌에서 가장 인기 많은 아가씨였다.

늘 흰옷을 입고 작은 흰색 로드스터를 몰았다.

어느 날 조던이 데이지의 집 앞을 지나는데, 데이지가 처음 보는 중위와 로드스터에 앉아 서로에게 푹 빠져 있었다.

그 중위의 이름이 제이 개츠비였다.

조던은 그 뒤로 4년 넘게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

그해 겨울, 데이지가 해외로 떠나는 군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몰래 짐을 싸다가 어머니에게 들켰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뒤 데이지는 다시 명랑해졌고, 이듬해 6월 시카고의 톰 뷰캐넌과 루이빌 역사상 가장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톰은 결혼 전날 35만 달러짜리 진주 목걸이를 선물했다.

조던은 신부 들러리였다.

결혼 만찬 삼십 분 전,

데이지의 방에 들어간 조던은 그녀가 만취한 채 침대에 누워 한 손엔 소테른 와인 병을,다른 손엔 편지 한 장을 쥐고 있는 걸 보았다.

데이지는 진주 목걸이를 쓰레기통에서 꺼내 돌려주라며 울었다.

욕조에 들어가면서까지 편지를 놓지 않다가, 종이가 눈처럼 조각조각 풀어지는 걸 보고서야 비누 접시 위에 내려놓았다.

다음 날 다섯 시, 데이지는 미동도 없이 톰 뷰캐넌과 결혼식을 올렸다.

산타바버라에서 다시 만났을 때 데이지는 남편에게 완전히 푹 빠진 듯 보였다.

하지만 그해 8월 톰은 밤길에 마차와 부딪혀 차 앞바퀴를 부쉈다.

그때 함께 있던 여자의 이름이 신문에 실렸다.

산타바버라 호텔의 객실 청소부였다.

이듬해 4월 데이지는 딸을 낳았고, 부부는 프랑스에서 1년을 보냈다.

시카고로 돌아온 뒤 데이지는 흠잡을 데 없는 평판을 유지했다.

“그리고 6주쯤 전, 데이지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개츠비라는 이름을 들었어요.” 조던이 말했다.

“당신한테 물어봤을 때 기억나요? 웨스트에그에 사는 개츠비를 아느냐고.

당신이 돌아간 뒤 데이지가 내 방에 와서 나를 깨우더니 ‘무슨 개츠비?‘라고 물었어요.

반쯤 잠든 채로 인상착의를 설명했더니, 데이지는 아주 이상한 목소리로 ‘자기가 알던 그 사람이 틀림없다’고 했어요.”

우리는 어느새 플라자를 나와 센트럴파크를 마차로 지나고 있었다.

“신기한 우연이네요.” 내가 말했다.

“우연이 아니에요.”

“어째서요?”

“개츠비가 그 집을 산 건 데이지가 만 건너편에 있어서였어요.”

그렇다면 그날 밤 그가 바라보던 건 그저 별이 아니었다.

목적 없어 보이던 그 화려함 뒤에서, 그는 문득 나에게 생생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부탁이 뭐냐면요.” 조던이 이어 말했다.

“언제 오후에 데이지를 당신 집에 초대해서 개츠비가 건너올 수 있게 해달래요.”

그의 부탁이 너무 소박해서 나는 놀랐다.

5년을 기다리고 대저택을 사서 낯선 나방들에게 별빛을 나눠주었던 남자가, 결국은 어느 오후 낯선 이의 정원에 “잠깐 들르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작은 다리 밑을 지날 때, 나는 조던의 황금빛 어깨에 팔을 두르고 그녀를 끌어당겨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어느새 나는 데이지와 개츠비 생각은 잊고, 이 깔끔하고 단단하고 세상만사에 회의적인 여자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데이지도 인생에 뭔가는 있어야죠.” 조던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데이지가 개츠비를 보고 싶어 해?”

“그건 몰라야 해요. 개츠비가 그러길 원해요. 당신은 그냥 차 마시자고 부르기만 하면 돼요.”

우리는 어두운 나무들의 장벽을 지났고, 곧 59번가의 창백한 빛으로 이루어진 한 블록이 공원 안으로 은은히 비쳐 들었다.

개츠비와 톰 뷰캐넌에게는 저마다 어두운 처마와 화려한 간판 사이를 떠도는 얼굴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런 얼굴이 없었기에, 나는 옆자리의 이 여자를 끌어당겨 팔에 힘을 주었다.

창백하고 냉소적인 그녀의 입술이 미소 지었고, 나는 그녀를 다시 한번 끌어당겨 내 얼굴 가까이로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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