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세계를 떠난 싱클레어, 방황이 시작되다 — 데미안 줄거리 4화

겉으로는 누구보다 당당해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가장 깊은 고독을 견디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숙학교로 떠난 싱클레어가 바로 그런 아이가 되어갑니다.

채워지지 않는 고독

처음 기숙학교에 갔을 때 싱클레어는 누구와도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냉소적인 태도와 튀는 말투 탓에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지만, 그는 오히려 그 고독을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굴었어요.

하지만 마음속은 조금씩 비어갔고, 문득문득 데미안이 떠올랐습니다.

그리움이라기보다는 원망에 가까웠어요.

물론 스스로 만든 핑계에 가까웠지만, 싱클레어는 지금 자신의 삶이 이렇게 된 원인을 데미안에게 돌리고 싶었습니다.

편지를 두 번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습니다.

이 대목이 짚어볼 만한 이유는 싱클레어가 자신의 방황 원인을 자꾸 외부로 돌리려 한다는 점입니다.

데미안이 열어준 세계에 발을 들였지만 그 세계를 혼자 감당할 준비는 되지 않았던 거예요.

그 공백이 이후 방황의 밑거름이 됩니다.

인정받을수록 깊어지는 외로움

11월의 어느 저녁, 선배 알폰스 베크를 만나 처음 술을 마시게 되면서 싱클레어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갑니다.

숙취와 불쾌감 속에서도 오랫동안 눌려 있던 뭔가가 풀린 듯한 해방감을 느꼈고,

그는 그것을 자유라 믿고 싶어 했어요.

술자리는 반복됐고, 그는 곧 무리 안에서 담대하고 말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인정받을수록 외로움은 오히려 깊어졌습니다.

친구들이 여자 이야기를 할 때 그는 낄 수 없었어요.

겉으로는 가장 대담한 척했지만, 정작 여자 앞에서는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이었거든요.

방학 때 집에 돌아갔을 때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핼쑥한 얼굴과 거무스름한 눈가로 어머니를 놀라게 했고,

한때 가장 따뜻하게 느껴졌던 크리스마스의 풍경들이 이제는 자신과 무관한 세계처럼 낯설게 느껴졌어요.

이 시기가 의미 있는 이유는 싱클레어가 겉으로 드러내는 방탕함이 실은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의 다른 이름이라는 점입니다.

겨울 내내 그는 무감각한 상태로 지냈고,

학교의 퇴학 경고나 아버지의 단호한 경고조차 마음에 닿지 않았습니다.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의 이상(理想)

데미안 4-1

봄이 되고, 어느 날 공원에서 한 여자를 보게 됩니다.

키가 크고 단정한, 소녀 같으면서도 지적인 분위기를 지닌 사람이었어요.

말 한마디 건넨 적 없었지만 그 인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싱클레어는 우연히 갖고 있던 그림엽서 속 인물을 떠올리며 그녀를 ‘베아트리체’라 부르기로 합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지점은 이 여성은 한 사람이라기보다,

싱클레어가 다시 자신을 찾기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이상에 가까웠습니다.

싱클레어는 그녀와 대화를 나눌 생각도, 실체를 알 필요도 느끼지 않았어요.

그저 그런 존재가 세상에 있다는 상상만으로 삶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술자리를 끊고 혼자 책을 읽으며 걷는 자세와 말투까지 다듬기 시작했죠.

이는 연애 감정이라기보다, 자신을 다시 정돈하려는 내적 의식(儀式)에 가까웠습니다.

그리려 할수록 멀어지는 얼굴

데미안 4-2

처음으로 혼자 쓰는 방이 생기자,

싱클레어는 물감과 붓을 사서 베아트리체의 얼굴을 그리려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실제로 본 얼굴을 떠올리려 애쓸수록 그림은 완성되지 않았어요.

포기하고 손이 가는 대로 붓을 움직이자, 오히려 낯선 얼굴 하나가 드러납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이었어요.

며칠 동안 그 그림을 서랍에 숨겨두고 홀로 들여다보던 어느 아침,

싱클레어는 그 얼굴의 정체를 알아차립니다.

오른쪽 눈이 왼쪽보다 조금 높이 자리한 특징적인 눈매, 데미안이었습니다.

이 장면이 소설에서 갖는 무게는 상당합니다.

싱클레어는 의식적으로 베아트리체를 그리려 했지만, 무의식은 전혀 다른 얼굴을 불러냈어요.

이는 싱클레어가 갈망한 것이 특정한 여성이 아니라,

데미안이 일깨웠던 자기 내면의 가능성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그림을 완성한 뒤에도 그 얼굴이 베아트리체도 데미안도 아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기 자신의 얼굴이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되죠.

이 통찰은 헤세가 소설 전체에서 반복하는 주제,

즉 타인을 통해 결국 자기 자신에게 닿게 된다는 성장의 구조를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이 무렵 방학 중 우연히 데미안과 마주쳤던 일도 다시 떠오릅니다.

술에 취한 채 잘난 척하던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매일 술집을 드나드는 습관을 가볍게 지적하면서도,

방탕한 시기가 오히려 어떤 사람에게는 통과의례가 될 수 있다는 뉘앙스의 말을 건넸어요.

그 말이 묘하게 불쾌했던 이유는,

자신의 방황을 데미안이 이미 꿰뚫어 보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을 겁니다.

5화에서는 완성되지 않은 그림이 데미안에게 닿는 과정과, 싱클레어가 처음 마주하게 되는 ‘아프락사스’라는 새로운 신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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