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너를 길들이기 전에, 나는 너를 잃었다 — 어린 왕자 줄거리 2화

너를 길들이기 전에, 나는 너를 잃었다 — 어린 왕자 줄거리 2화

2부. 사랑을 몰랐던 시절부제: 너를 길들이기 전에, 나는 너를 잃었다3화. 노을을 마흔세 번 보던 아이아이는 노을을 좋아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어째서 하루에 마흔세 번이나 노을을 바라봐야 했던 걸까요. 아이가 살아온 쓸쓸한 삶을 저는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애에게 유일한 낙은 노을이 주는 부드러운 위로였어요. 넷째 날 아침, 아이가 대뜸 말했습니다. "노을이 좋아. 노을 보러 가자." 기다려야 한다고 답하자,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고 물었어요. 해가 질 때까지라고 하자 처음엔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제 말에 어이가 없는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나는 늘 내 별에 있는 줄 알았네!" 그럴 만도 했어요. 지구에서 노을을 두 번 보려면 미국에서 순식간에 프랑스로 날아가야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반면 아이가 살던 아주 작은 별에서는 의자를 몇 걸음 뒤로 물리기만 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원할 때면 언제든 몸을 돌려 저무는 해를 볼 수 있었어요. "어느 날은 노을을 마흔세 번이나 봤어!" 아이가 가만히 덧붙였습니다. "그거 알아? 사람이 너무 슬프면 노을이 좋아진다는 거." 그럼 노을을 마흔세 번이나 본 그날, 그렇게도 슬펐던 거냐고 물었지만, 어린 왕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닷새째 되던 날, 이번에도 양 덕분에 아이의 비밀 하나를 더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오랫동안 혼자 품어온 고민을 쏟아내듯 대뜸 물었어요. "양이 작은 나무를 먹으면, 꽃도 먹어?" 눈에 띄는 건 다 먹는다고 하자, 아이는 가시가 있는 꽃도 그러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렇다고 답하자 아이가 다그쳤어요. "그럼 가시는 대체 무슨 소용이야?" 저도 몰랐습니다. 비행기 엔진에 너무 꽉 조여진 볼트를 푸느라 끙끙대던 참이었어요. 고장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마실 물마저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최악의 상황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아이는 한 번 던진 질문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어요. 짜증이 난 저는 되는대로 대답해 버렸습니다. "가시 따위 아무 쓸모 없어! 그냥 꽃들이 심술부리는 것뿐이야."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어린 왕자가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쏘아붙였어요. "안 믿어! 꽃들은 약하고 순진해. 그저 자기 나름대로 안심하고 싶은 거야. 가시를 두르면 자기가 엄청 무서운 존재가 된 줄 알거든." 저는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속으로는 이 볼트가 끝까지 안 풀리면 망치로 쳐서 깨버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아이가 다시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럼 넌 꽃들이 정말로……." "아니, 아니라고! 나는 아무것도 안 믿어! 방금 건 그냥 던진 말이야. 난 지금 아주 중요한 일로 바쁘다고!" 어린 왕자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저를 빤히 쳐다보았어요. 손에는 망치를 쥐고 손가락엔 기름때를 시커멓게 묻힌 채, 볼품없는 쇳덩이 위에 웅크린 제 꼴을 본 것이지요. "당신, 꼭 어른들처럼 말하네!" 그 말에 얼굴이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가차 없이 몰아붙였어요. "당신은 모든 걸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어. 전부 다 헷갈리고 있다고!" 아이는 단단히 화가 나 있었습니다. 금빛 머리카락을 바람에 흩날리며 소리쳤어요. "내가 아는 어떤 별에는 얼굴이 시뻘건 신사가 살아. 그 사람은 평생 꽃향기 한 번 맡아본 적 없고, 밤하늘의 별 한 번 올려다본 적 없어. 누굴 사랑해본 적도 없이 그저 덧셈만 하며 살았지. 온종일 당신처럼 '나는 진지한 사람이다!' 그러면서 잔뜩 우쭐대. 하지만 그건 사람이 아니라 버섯이야!" 화가 나 얼굴이 하얗게 질린 어린 왕자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수백만 년 전부터 꽃들은 가시를 만들었고, 양들은 그 세월 내내 꽃을 먹어 치웠는데, 꽃들이 왜 그토록 애써 아무 쓸모도 없는 가시를 만들어내는지 이해하려는 게 진지하지 않은 일이냐고, 양과 꽃의 이 오랜 전쟁이 붉은 신사의 덧셈보다 덜 중요하냐고 아이는 따져 물었어요. 온 우주를 통틀어 오직 자기 별에만 피어나는 단 한 송이의 꽃을, 어느 날 아침 작은 양이 무심코 한입에 씹어 삼켜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중요하지 않냐고요. 수백만 개의 별들 중 오직 단 하나에만 피어 있는 꽃을 사랑하게 된다면,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진다고, 저기 어딘가에 내 꽃이 있겠지 생각할 테니까라고 아이는 말했습니다. 그런데 양이 그 꽃을 먹어버리면 순식간에 우주의 모든 별이 까맣게 꺼져버리는 거나 다름없는데, 그게 중요하지 않냐고요. 아이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끝내 와락 울음을 터뜨렸어요. 어느새 주위는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저는 쥐고 있던 연장을 바닥에 내려놓았어요. 망치와 볼트, 지독한 목마름과 코앞에 닥친 죽음마저도 이제는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이 지구 위에 당장 위로가 필요한 어린 왕자가 있었으니까요. 아이를 품에 안고 천천히 달랬습니다. "네가 사랑하는 그 꽃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거야. 네 양에게 씌울 입마개를 그려줄게. 꽃을 감싸줄 갑옷도 그려줄게." 하지만 도무지 무슨 말을 더 건네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고장 난 엔진 앞에서만 서툴렀던 게 아니었습니다. 눈물의 나라가 얼마나 신비로운 곳인지를 저는 비로소 알았습니다. 4화. 세상에 하나뿐인 꽃이라 믿었던 장미 아이의 별에는 원래 꽃잎이 한 장뿐인 소박한 꽃들이 피고 졌어요. 자리도 차지하지 않고 조용히 피었다가 저녁이면 고요히 스러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씨앗 하나가 싹을 텄어요. 아이는 그것이 맺은 커다란 꽃봉오리를 예의 주시했습니다. 꽃은 초록빛 방에 숨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요. 빛깔을 고르고 꽃잎을 하나씩 매만지며 완벽한 순간을 기다리다, 며칠 뒤 해가 떠오르는 순간 화려하게 피어났습니다. "아, 이제 막 일어났어. 머리도 헝클어져 있는데." 그토록 정성을 들여놓고도 꽃은 능청을 떨었어요. 아이는 벅찬 감탄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정말 아름답구나!" "그렇지? 난 해와 한날한시에 태어났거든." 꽃은 거만했지만 아이의 마음을 뒤흔들기엔 충분했어요. 꽃은 아침을 먹을 시간이라며 당돌하게 물을 요구했고, 얼떨떨해진 아이는 맑은 물을 길어와 정성껏 꽃을 돌보았습니다. 하지만 꽃의 허영심은 이내 아이를 지치게 했어요. 꽃은 가시 네 개를 세우고는 호랑이가 덤벼도 끄떡없다고 허세를 부리거나, 밤에는 춥다며 바람막이와 유리 덮개를 요구했습니다. 다른 세계에서 온 척 거짓말을 하려다 말문이 막히자, 민망함을 감추려 헛기침을 해대며 도리어 아이를 탓하기도 했어요. 정성껏 돌보았음에도 아이는 서서히 꽃을 의심하게 되었고, 가시 돋친 빈말들을 너무 깊이 새겨들은 탓에 스스로 불행해졌습니다. "그 말들을 귀담아듣지 말았어야 했어." 훗날 아이는 제게 털어놓았어요. "꽃이 하는 말은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돼. 그저 바라보고 향기만 맡으면 충분했어. 내 꽃은 별 전체를 향기로 가득 채워주었는데, 난 그걸 온전히 기뻐하지 못했어." 아이는 씁쓸하게 말을 이었습니다. "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어.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그 애를 믿었어야 했어. 꽃은 원래 그렇게 모순된 존재였는데, 하지만 그때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어." 결국 아이는 철새들의 이동을 틈타 별을 빠져나왔어요. 떠나는 날 아침, 아이는 별을 말끔히 치웠습니다. 밥을 데우는 데 쓰던 활화산 두 개와 사화산 하나까지 정성껏 닦아냈어요. 마지막 바오밥나무 싹들을 솎아낼 때, 아이는 한없이 서글퍼졌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이 익숙한 손길이 그날따라 유독 달콤하게 느껴졌어요. 꽃에게 물을 주고 유리 덮개를 씌워주려는 순간 왈칵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잘 있어." 꽃은 대답 없이 헛기침만 했어요. 감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어리석었어. 미안해. 부디 행복해." 불평 대신 차분하게 진심을 전하는 꽃의 모습에 아이는 당황했어요. "그래, 널 사랑해. 그건 내 잘못이야. 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겠어. 너도 나만큼이나 어리석었지. 부디 행복해. 그리고 그 덮개는 그냥 둬." "하지만 바람이 불면……." "밤공기가 오히려 내게 좋을 거야. 난 꽃이니까." "하지만 짐승들이……." "나비를 보려면 애벌레 두세 마리쯤은 견뎌야지. 나비는 정말 아름답잖아. 안 그러면 대체 누가 날 찾아오겠어? 너는 멀리 떠날 텐데. 덩치 큰 짐승들은 무섭지 않아. 내게도 발톱이 있으니까." 꽃은 가시 네 개를 내보이며 순진하게 말했습니다. "꾸물대지 말고 어서 가. 떠나기로 했잖아." 우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는, 그 꽃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어요. 아이는 하나뿐인 장미를 남겨둔 채, 그렇게 별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사랑을 뒤로한 채, 작은 별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우주는 생각보다 훨씬 이상한 어른들로 가득한 곳이었어요. ☕ 독서 후 한 잔, 화사한 풍미의 예가체프 드립백 커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