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 Zipyears
- 29 Jul, 2026
초록 불빛까지 오십 야드 — 위대한 개츠비 줄거리 5화
5화. 초록 불빛까지 오십 야드 그날 밤 웨스트에그로 돌아왔을 때, 나는 한순간 우리 집에 불이 난 줄 알았다. 새벽 두 시, 반도의 한쪽 귀퉁이 전체가 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모퉁이를 돌자 그게 개츠비의 저택이라는 걸 알았다.탑에서 지하실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처음엔 또 파티가 열린 건가 싶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이 전선을 흔들어 집 전체가 어둠 속에서 눈을 깜빡이듯 불빛이 켜졌다 꺼졌다 할 뿐이었다.택시가 신음하며 떠나갈 때, 개츠비가 잔디밭을 가로질러 나에게 걸어오는 게 보였다. "댁이 꼭 세계 박람회장 같네요." 내가 말했다. "그런가요?" 그는 멍하니 그쪽으로 눈을 돌렸다."방 몇 개를 좀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베이커 양이랑 얘기했어요." 잠시 뒤 내가 말했다."내일 데이지한테 전화해서 우리 집에 차 마시러 오라고 할게요." "아, 그거야 괜찮아요." 그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번거롭게 하고 싶진 않은데." "모레는 어때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내키지 않는 듯 말했다."잔디를 좀 깎아야 해서." 우리는 둘 다 잔디를 내려다보았다.그가 말한 게 사실 내 집 잔디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더 있는데." 그가 머뭇거리며 말했다."그러니까, 내 생각엔—저기, 형씨, 돈 많이 못 벌죠?" "별로 많이는." "그럴 줄 알았어요,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나는 부업으로 좀 하는 일이 있어요.채권 파는 일 하시죠, 형씨?그럼 관심 있을 거예요.시간도 많이 안 걸리고 꽤 짭짤한 돈을 벌 수 있어요.다만 좀 은밀한 일이라서요." 지금 생각하면 다른 상황이었다면 그 대화가 내 인생의 어떤 전환점이 됐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그 제안은 너무 노골적으로, 대가성 서비스에 대한 것이었기에 나는 그 자리에서 잘라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저 지금도 일이 꽉 차 있어서요." 내가 말했다."고맙지만 더 맡을 여력이 없어요." "울프심이랑 직접 거래할 일은 없을 거예요."그는 아마 내가 점심때 언급됐던 그 "연줄"을 꺼리는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지만, 결국 그는 마지못해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사무실에서 데이지에게 전화를 걸어 차를 마시러 오라고 초대했다. "톰은 데려오지 마." 내가 주의를 줬다. "'톰'이 누군데?"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약속한 날은 억수 같은 비가 내렸다. 오전 열한 시, 레인코트를 입고 잔디깎이를 끄는 남자가 우리 집 현관을 두드리며 개츠비 씨가 잔디를 깎으러 보냈다고 했다.그제야 나는 핀란드인 가정부를 다시 부르는 걸 깜박했다는 걸 깨닫고,젖은 골목길을 헤치며 찻잔과 레몬과 꽃을 사러 마을로 나갔다. 꽃은 사실 필요 없었다. 오후 두 시, 개츠비의 집에서 온실 하나를 통째로 옮겨온 듯한 꽃들이 도착했으니까.한 시간 뒤 현관문이 열리더니 흰 플란넬 정장에 은색 셔츠, 금색 넥타이를 맨 개츠비가 초조한 얼굴로 서둘러 들어왔다.얼굴은 창백했고 눈 밑엔 잠 못 이룬 흔적이 짙게 남아 있었다. "다 괜찮은 거지?" 그가 대뜸 물었다. "잔디는 멀쩡해 보이는데, 그거 말하는 거면." "무슨 잔디?" 그는 멍하니 되물었다.창밖을 봤지만 표정으로 보아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그를 부엌으로 데려가자 그는 핀란드인 가정부를 살짝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봤다. 우리는 함께 델리에서 사 온 레몬 케이크 열두 개를 뜯어보았다. "이거면 될까?" 내가 물었다. "그럼, 그럼! 좋아!" 그는 공허하게 덧붙였다. "…형씨." 세 시 반쯤 비는 축축한 안개로 잦아들었다. 개츠비는 멍한 눈으로 경제학 책을 뒤적이다가, 부엌 바닥을 울리는 핀란드인의 발소리에 흠칫하고, 흐린 창밖을 자꾸 힐끔거렸다. 그러다 그는 불안한 목소리로 이제 집에 가야겠다고 말하며 일어섰다. "왜?" "아무도 안 올 거야. 너무 늦었어!" 그는 마치 다른 급한 일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손목시계를 봤다. "하루 종일 기다릴 순 없잖아." "바보 같은 소리, 이제 네 시 이 분 전이야." 그는 내가 떠민 것처럼 힘없이 다시 앉았다. 바로 그 순간, 진입로로 들어서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물기 어린 라일락 나무 아래로 커다란 오픈카 한 대가 올라왔다. 세모난 라벤더색 모자 아래로 기울어진 데이지의 얼굴이 밝고 황홀한 미소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 사랑해?" 그녀가 낮게 내 귀에 속삭였다. "아니면 왜 나 혼자 오게 한 거야?"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은 텅 비어 있었다. "어머, 이상하네." 내가 말했다. 그때 현관에서 위엄 있는 노크 소리가 났다. 나가서 문을 열자,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로 두 손을 코트 주머니에 무겁게 찔러 넣은 개츠비가 물웅덩이 속에 서서 비극적인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나를 지나쳐 복도로 들어섰다가, 마치 줄에 매달린 듯 날카롭게 방향을 틀어 거실로 사라졌다. 전혀 우습지 않았다. 내 심장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긴장한 채, 나는 점점 거세지는 빗속에서 문을 닫았다. 반 분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 거실에서 목이 메는 듯한 웅얼거림과 반쯤 잘린 웃음소리, 그리고 데이지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밝은 톤으로 들려왔다. "다시 만나서 정말이지 너무 반가워요." 침묵이 견디기 힘들 만큼 길게 이어졌다. 딱히 복도에서 할 일이 없어서 나는 거실로 들어갔다.개츠비는 여전히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벽난로 선반에 기대어 흠잡을 데 없는 여유, 심지어 지루함을 연기하고 있었다. 고개를 뒤로 젖혀 벽난로 위 멈춰버린 시계에 기댄 채, 겁먹었지만 우아하게 딱딱한 의자 끝에 앉은 데이지를 초조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 전에 만난 적 있죠." 개츠비가 중얼거렸다. 그의 눈이 잠깐 나를 향했고, 입술이 벌어지며 웃음을 지으려다 실패했다. 다행히 그 순간 시계가 그의 머리 무게에 눌려 위태롭게 기울었다. 그는 몸을 돌려 떨리는 손가락으로 시계를 붙잡아 제자리에 놓았다. 그러고는 뻣뻣하게 자리에 앉아, 팔꿈치를 소파 팔걸이에 괴고 턱을 손에 받쳤다. "시계는 미안해." 그가 말했다.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다시 들어왔을 때 두 사람은 소파 양 끝에 앉아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어색함은 이미 씻은 듯 사라져 있었다. 데이지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졌고, 나를 보자 벌떡 일어나 거울 앞에서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하지만 개츠비에게는 뭔가 완전히 달라진 게 있었다. 그는 말 그대로 빛나고 있었다. 어떤 말이나 몸짓 없이도, 새로운 행복이 그에게서 뿜어져 나와 작은 방을 가득 채웠다. 데이지가 세수를 하러 이층으로 올라간 사이, 개츠비와 나는 잔디밭에서 기다렸다. "내 집, 근사해 보이지 않아?" 그가 물었다. "앞면 전체가 빛을 받는 것 좀 봐." 근사하다고 나는 맞장구쳤다. "그렇지." 그의 눈이 아치형 문과 네모난 탑들을 하나하나 훑었다. "이걸 살 돈을 버는 데 딱 삼 년 걸렸어." "물려받은 재산인 줄 알았는데요." "그랬지, 형씨." 그는 무심코 대답했다. "그런데 전쟁 통에, 그 공황 때 대부분 잃었어."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 무슨 사업을 하냐고 묻자 "그건 내 일이야"라고 답했다가, 적절한 대답이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는 얼른 고쳐 말했다. "여러 가지 했어. 약재상도 했고, 그다음엔 석유 사업도 했지. 지금은 둘 다 아니지만." 데이지가 내려오자 우리 셋은 개츠비의 저택으로 함께 건너갔다. 이층으로 올라가 장미빛과 라벤더빛 실크로 감싸이고 새 꽃으로 장식된 침실들, 드레스룸과 당구실, 욕조가 움푹 들어간 욕실들을 차례로 지나쳤다.마지막으로 개츠비 자신의 방에 이르러 우리는 앉아서 벽장 속 샤르트뢰즈 술을 한 잔씩 마셨다. 개츠비는 옷장 문을 열더니 셔츠 더미를 하나씩 꺼내 던지기 시작했다.얇은 리넨과 두꺼운 실크, 고운 플란넬로 만든 셔츠들이 접힌 상태 그대로 쌓이며 색색의 탑을 이뤘다.줄무늬와 소용돌이무늬, 격자무늬, 산호색과 사과색과 라벤더색과 옅은 오렌지색, 짙은 파란색 모노그램이 새겨진 셔츠들. 문득 데이지가 셔츠 더미에 고개를 파묻고 격하게 울기 시작했다. "셔츠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녀가 두꺼운 천 속에서 흐느끼며 말했다."슬퍼져.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집 안을 둘러본 뒤에는 정원과 수영장을 구경할 차례였지만, 창밖으로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우리는 나란히 서서 해협의 물결만 바라보았다."안개만 아니었으면 만 건너 당신 집이 보일 텐데." 개츠비가 말했다."당신 집 부두 끝에는 밤새 켜져 있는 초록 불빛이 있잖아." 데이지가 문득 그의 팔을 끼었지만, 그는 방금 자기가 한 말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듯했다. 어쩌면 그 불빛이 지녔던 막대한 의미가 이제 영영 사라져버렸다는 걸 깨달은 건지도 몰랐다. 데이지와 그를 갈라놓던 그 아득한 거리에 비하면, 그 불빛은 그녀에게 거의 닿을 듯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였었다.별과 달만큼이나 가깝게.이제 그것은 다시 그냥 부두 위의 초록 불빛일 뿐이었다.그가 매혹을 느끼던 대상이 하나 줄어든 셈이었다. 나는 방 안을 이리저리 걸으며 어스름 속의 이런저런 물건들을 살펴보았다.책상 위 벽에 걸린, 요트 복장을 한 나이 든 남자의 커다란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이건 누구야?" "저건? 저건 댄 코디 씨야, 형씨.지금은 돌아가셨어. 예전에 나랑 제일 친했던 친구지." 서랍장 위에는 역시 요트 복장을 한 개츠비의 작은 사진도 있었다.열여덟 살쯤 됐을 때 찍은 것 같았다. "너무 예뻐." 데이지가 감탄했다."이 올림머리! 요트 있었다는 것도 얘기 안 해줬잖아." 전화벨이 울렸고, 개츠비가 수화기를 들었다."네… 지금은 통화 못 해요… 작은 도시라고 했잖아요…디트로이트를 작은 도시로 생각한다면 우리한테 아무 소용 없어요…" 그는 전화를 끊었다. "빨리 이리 와봐!" 창가에서 데이지가 외쳤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서쪽 하늘의 어둠이 갈라지며 바다 위로 분홍빛과 금빛이 뒤섞인 거품 같은 구름이 물결치고 있었다. "저것 좀 봐." 그녀가 속삭였다. "저 분홍 구름 하나를 떼어다 당신을 태우고 이리저리 밀어주고 싶어." "좋은 생각이 있어." 개츠비가 말했다. "클립스프링어한테 피아노 치라고 하자." 그는 방을 나가 "유잉!" 하고 부르더니,잠시 후 조금 지친 듯한 낯빛에 뿔테 안경을 쓴 청년을 데리고 돌아왔다. "클립스프링어가 피아노를 쳐." 개츠비가 그의 변명을 끊었다."그렇지, 유잉, 형씨?" "잘 못 쳐요. 완전히 손을 놨—" "내려가자." 개츠비가 말을 끊었다. 그가 스위치를 켜자 잿빛이던 창문들이 사라지고 집 안이 온통 환한 빛으로 가득 찼다. 음악실에서 개츠비는 피아노 옆의 램프 하나만 켰다. 떨리는 성냥으로 데이지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는,홀에서 새어 드는 마룻바닥 빛 말고는 아무 불빛도 없는 방 저편 소파에 그녀와 나란히 앉았다. 밖에서는 바람이 요란했고 해협을 따라 희미한 천둥소리가 울렸다.이제 웨스트에그 곳곳에 불이 켜지고 있었다. 어떤 심오한 인간적 변화의 시간이었고, 공기 중에는 흥분이 감돌고 있었다. 작별 인사를 하러 갔을 때, 나는 개츠비의 얼굴에 다시 당혹감이 번지는 걸 보았다.지금 이 행복이 진짜인지 희미한 의심이 스친 듯했다. 거의 오 년이었다. 그날 오후 어느 순간, 데이지는 분명 개츠비의 꿈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데이지의 잘못이 아니라, 개츠비의 환상이 워낙 거대하게 자라나 있었기 때문이다.그 환상은 데이지를, 그리고 모든 것을 넘어서 있었다.사람이 유령 같은 마음속에 쌓아 올린 것을, 그 어떤 생생함으로도 뛰어넘을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지켜보는 사이 개츠비는 스스로를 조금씩 다잡았다. 그의 손이 데이지의 손을 잡았고, 데이지가 낮게 뭔가를 속삭이자 그는 벅찬 감정으로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나는 그를 가장 사로잡은 것이 바로 그 목소리라고 생각한다.흔들리고 열띤 그 온기는 아무리 꿈꿔도 지나칠 수 없는, 영원히 죽지 않는 노래 같은 목소리였다. 두 사람은 나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데이지가 문득 나를 올려다보며 손을 내밀었지만, 개츠비는 이제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방을 나와 대리석 계단을 내려가 빗속으로 걸어갔다. 그들 둘만을 남겨둔 채. ☕ 비 오는 날의 떨리는 재회처럼, 깊고 부드러운 향기의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드립백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