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길들인다는 것의 의미 — 어린 왕자 줄거리 4화

길들인다는 것의 의미 — 어린 왕자 줄거리 4화

8화. 111명의 왕이 사는 별, 지구 일곱 번째로 도착한 별은 지구였어요. 지구는 결코 평범한 행성이 아니었습니다. 왕이라는 왕을 모두 모으면 111명, 지리학자는 7천 명, 사업가는 90만 명, 술꾼은 750만 명, 허영쟁이는 무려 3억 1,100만 명. 어른들만 모두 합쳐도 대략 20억 명쯤 되는 거대한 별이지요. 전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여섯 대륙을 밝히기 위해 무려 46만 2,511명의 가로등지기가 필요했습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면, 마치 거대한 오페라 발레단의 군무 같았어요.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시작해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까지 차례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지구는 쉼 없이 이어지는 빛의 바통을 단 한 번도 놓치는 법이 없었지요. 오직 북극과 남극의 가로등지기 두 사람만은 이 분주한 군무에서 비껴나 있었습니다. 그들은 1년에 단 두 번만 불을 켜면 되었으니까요. 방금 가로등지기들의 웅장한 군무를 늘어놓았지만, 실은 인류가 지구 위에서 차지하는 자리란 참으로 하찮은 것이에요. 20억 명이 광장에 모여 회의를 하듯 바짝 붙어 선다면, 가로세로 20마일 크기의 광장 하나로도 충분합니다. 인류 전체를 태평양의 작은 무인도 하나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물론 어른들에게 이 말을 들려줘 봐야 곧이곧대로 믿어줄 리 없습니다. 저마다 자신이 바오밥나무만큼이나 거대하고 대단한 존재라고 굳게 믿고 살아가니까요. 그들을 납득시키고 싶다면 직접 계산해 보라고 권하면 됩니다. 숫자를 끔찍이 사랑하는 어른들은 틀림없이 그 제안을 반길 테니까요. 하지만 굳이 그런 무의미한 숙제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이 말을 믿으면 그만이에요. 지구에 도착한 어린 왕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아 몹시 당황했습니다. 혹시 별을 잘못 찾아온 건 아닌지 두려워하던 찰나, 달빛을 머금은 고리 하나가 모래 위를 스르르 꿈틀댔어요."안녕." 어린 왕자가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안녕." 뱀이 대답했어요. "여긴 어느 별이야?" "지구야. 그중에서도 아프리카지." "아! 그럼 지구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여긴 사막이니까. 사막엔 사람이 없지. 지구는 아주 거대하거든." 어린 왕자는 돌 위에 걸터앉아 까마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별들이 저렇게 빛나는 건, 언젠가 누구나 자기 별을 다시 찾아갈 수 있도록 길을 밝혀주려는 게 아닐까." 아이가 중얼거렸어요. "내 별을 봐. 바로 우리 머리 위에 떠 있어. 그런데 참 아득하게 멀리 있네!" "아름답구나." 뱀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여긴 대체 무슨 일로 온 거야?" "꽃이랑 좀 힘든 일이 있었거든." 어린 왕자가 털어놓았어요. 둘 사이로 짙은 침묵이 내려앉았습니다. "사람들은 다 어디 있어?""사막에 혼자 있으니까 조금 외롭네." 어린 왕자가 정적을 깼어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어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야." 뱀이 서늘하게 대꾸했습니다. 어린 왕자는 한참 동안 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어요. "너는 참 이상하게 생긴 짐승이구나. 손가락만큼 가느다랗고." "그래 봬도 나는 왕의 손가락보다 훨씬 힘이 세단다." 어린 왕자가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그렇게 힘이 셀 리가. 넌 발도 없어서 여행조차 할 수 없잖아." "나는 세상의 어떤 배보다도 너를 훨씬 더 먼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어." 뱀이 말했어요. 뱀은 마치 황금 팔찌처럼, 소리도 없이 어린 왕자의 발목을 휘감았습니다. "내가 건드리는 자는 누구든 자신이 태어난 흙으로 되돌아가게 되지. 하지만 너는 너무도 순수하고, 머나먼 별에서 왔으니……." 어린 왕자는 그저 말없이 뱀을 내려다볼 뿐이었어요. "너처럼 한없이 연약한 아이가 이 단단한 화강암투성이 지구에 서 있는 걸 보니 마음이 쓰이는구나. 언젠가 네 별이 견딜 수 없이 그리워지면,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어." "아,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겠어." 어린 왕자가 뱀의 말을 가로챘습니다. "그런데 너는 왜 항상 수수께끼처럼 말하는 거야?" "나는 그 모든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존재니까." 뱀이 속삭였어요. 둘은 다시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어린 왕자는 뱀이 남긴 수수께끼를 등에 진 채 사막을 가로질러 걸었어요.9화. 내 장미는 특별하지 않았다 사막을 건너던 어린 왕자는 꽃 한 송이와 마주쳤습니다. 화려하지도 향기롭지도 않은, 꽃잎 세 장이 전부인 보잘것없는 꽃이었어요. 그의 별에 두고 온 우아한 장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지요. 하지만 이 볼품없는 꽃과의 짧은 대화는 그가 얼마나 아득하고 낯선 세상에 발을 들였는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린 왕자는 꽃에게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냐고 물었어요. "사람들? 옛날에 캐러밴이 지나가는 걸 본 적은 있어. 한 예닐곱 명쯤 될까? 지금 어디 있는지는 장담 못 해. 사람들은 뿌리가 없어서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거든. 참 고단한 삶이지." 어린 왕자에게는 낯선 이야기였습니다. 무릎 높이의 화산 세 개와 장미 한 송이가 세상의 전부였던 그에게 뿌리 없이 바람에 떠밀려 다니는 삶이란 상상조차 되지 않았어요. 그는 그저 "잘 가"라는 짧은 인사만 남기고 꽃과 헤어졌습니다. 이후 그는 사람을 찾아 높은 산에 올랐어요. 그가 아는 산이라곤 제 무릎에 닿던 작은 화산 세 개가 전부였으니, 이렇게 높은 산에서라면 별 전체와 그 위의 모든 사람들을 한눈에 볼 수 있으리라 믿었지요. 하지만 막상 산 정상에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날카롭게 솟구친 바위 봉우리들뿐이었습니다. "안녕." 그가 허공에 무작정 인사를 건넸어요. "안녕… 안녕… 안녕……." "누구야?" 물어도, "친구가 되어줘, 난 혼자야" 외쳐도, 돌아오는 건 제 목소리를 그대로 되비추는 메아리뿐이었습니다. '참 이상한 별이야. 메마르고 뾰족하고, 사람들은 메아리처럼 남의 말만 되풀이하잖아.' 내 별의 꽃은 늘 먼저 말을 걸어주었는데. 모래밭과 바위, 눈밭을 한참 헤맨 끝에 그는 길을 하나 찾아냈습니다. 모든 길은 결국 사람의 사는 곳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니까요. 길 끝에는 장미가 만발한 정원이 있었어요. 그가 인사를 건네자 장미들이 일제히 인사를 받아주었습니다. 어린 왕자는 멍하니 꽃들을 바라보았어요. 하나같이 그가 별에 두고 온 장미와 똑같이 생겼거든요. 누구냐고 묻자, 꽃들은 입을 모아 "장미"라고 대답했습니다. 순간, 깊은 상실감이 그를 덮쳤어요. 그의 장미는 늘 자신이 온 우주에 단 하나뿐인 존재라고 속삭이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원 하나에만 서로 꼭 닮은 장미가 무려 오천 송이나 피어 있었지요. 만약 자기 별의 장미가 이 광경을 본다면 자존심이 상해 어쩔 줄 모를 것입니다. 창피함을 무마하려 발작적으로 기침을 해대며 죽어가는 시늉을 할 테고, 그러면 그는 진짜로 그 애를 돌보는 척 우왕좌왕해야만 할 터였어요. 그렇게라도 달래지 않으면 그 자존심 강한 장미는 정말로 시들어 죽어버리는 쪽을 택할 게 뻔했으니까요. 그는 문득 씁쓸한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꽃을 가진 부자인 줄 알았어. 하지만 내게 있는 건 흔해 빠진 장미 한 송이와 무릎 높이의 화산 세 개, 그나마 하나는 영원히 꺼져버렸을지도 모를 사화산이 전부야. 이 정도로는, 나는 결코 대단한 왕자가 될 수 없어.' 그는 풀밭에 엎드려 소리 내어 울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울음 위로 여우가 나타났어요.10화. "길들인다"는 말의 의미풀밭에 엎드려 울고 있던 어린 왕자에게 낯선 목소리가 인사를 건넸습니다. 어린 왕자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받았지만, 돌아보아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어요. "나 여기 있어, 사과나무 아래." 목소리의 주인공은 여우였습니다. 어린 왕자는 몹시 슬프다며 함께 놀자고 청했어요. 하지만 여우는 자신은 아직 길들여지지 않았으니 함께 놀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어린 왕자가 물었어요. 여우는 사람들이 요즘 거의 잊어버린 말이라며, 그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금 여우에게 어린 왕자는 십만 명의 다른 소년과 다를 바 없고, 어린 왕자에게 여우 역시 십만 마리의 흔한 여우 중 하나일 뿐이지요. 하지만 서로를 길들인다면 둘은 서로에게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그 말에 어린 왕자는 문득 자기 별에 두고 온 장미를 떠올렸어요. "내게 꽃이 하나 있는데… 그 꽃이 나를 길들였나 봐." 여우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다, 그곳이 지구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몹시 흥미로워했습니다. "다른 별이라고? 그 별에 사냥꾼도 있어?" "아니, 없어." "그거 정말 흥미로운데! 그럼 닭은?" "없어." 여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어요. "세상에 흠 하나 없는 곳은 역시 없구나." 여우는 다시 차분히 말을 이었습니다. 여우의 삶은 닭을 쫓고 사람에게 쫓기는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이었어요. 하지만 어린 왕자가 자신을 길들인다면 삶이 온통 환해질 거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발소리는 자신을 굴속으로 숨게 하지만, 어린 왕자의 발소리는 마치 음악처럼 자신을 굴 밖으로 불러낼 거라고요. 여우는 한참을 침묵하다 어린 왕자를 가만히 바라보았어요. "저기 밀밭 보이지? 나는 빵을 안 먹으니 밀밭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어. 하지만 네가 금빛 머리카락을 가졌으니, 네가 나를 길들이면 황금빛 밀밭이 너를 떠올리게 해줄 거야. 밀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마저 사랑하게 되겠지. 부탁이야… 나를 길들여줘!" "그러고 싶어." 어린 왕자가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내겐 시간이 많지 않아. 알아가야 할 친구들도 있고, 찾아야 할 것도 많거든." 여우가 조용히 타일렀어요. "우리는 길들인 것만 알 수 있어. 사람들은 이제 무엇을 진득하게 알아갈 시간조차 없지. 상점에서 다 만들어진 물건을 사기만 하니까. 하지만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기에 사람들은 더 이상 친구가 없어. 친구를 원한다면 나를 길들여." 여우는 길들이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말없이 거리를 두고 앉아 있다가, 매일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앉으며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어요. 말은 오해를 낳기 마련이니까요. 다음 날 어린 왕자가 다시 찾아가자 여우가 말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오는 게 더 좋아.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다 네 시가 되면 이미 안절부절못하며 기뻐하겠지. 그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게 되는 거야. 하지만 네가 아무 때나 오면 언제 마음을 준비해야 할지 알 수 없잖아. 그래서 의식이 필요해." "의식이 뭐야?" "어느 하루를 다른 날들과 다르게, 어느 한 시간을 다른 시간들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거야. 이를테면 사냥꾼들은 목요일마다 마을 처녀들과 춤을 춰. 그래서 내게 목요일은 포도밭까지 산책하는 근사한 날이지. 사냥꾼들이 아무 때나 춤을 춘다면 모든 날이 똑같아져 내겐 쉬는 날이 하나도 없을 거야." 그렇게 어린 왕자는 여우를 길들였습니다. 그리고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어요. "아, 나 울 것 같아." 여우가 말했습니다. "그건 네 잘못이야." "나는 네게 아무런 나쁜 뜻도 없었는데, 네가 길들여 달라고 원했잖아……" 어린 왕자가 말했어요. "그래, 맞아." 여우가 말했습니다. "근데 이제 울려고 하잖아!" "그래, 맞아." "그럼 넌 얻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얻는 게 있어." 여우가 말했어요. "밀밭의 색깔 덕분에."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다시 정원의 장미들을 보러 가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장미가 세상에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될 거라고 했어요. 어린 왕자는 오천 송이의 장미를 다시 마주했습니다. "너희는 내 장미와 전혀 달라. 아직 아무것도 아니지.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지 않았으니까. 예전의 내 여우도 십만 마리의 흔한 여우와 같았지만, 내가 친구로 삼은 뒤 세상에 하나뿐인 여우가 됐어." 장미들은 몹시 무안해했습니다. "너희는 아름답지만 텅 비어 있어. 누구도 너희를 위해 목숨을 바치진 않을 거야. 내 꽃 역시 지나가는 사람에겐 너희와 다를 바 없겠지. 하지만 내게는 그 한 송이가 너희 모두를 합친 것보다 소중해. 내가 직접 물을 주고, 유리 덮개를 씌워주고, 바람막이로 지켜주었으니까. 나비를 위해 남겨둔 두세 마리 외엔 애벌레도 잡아주었고, 불평과 허풍, 심지어 침묵까지 들어주었지. 그건 내 장미이기 때문이야." 어린 왕자는 여우에게 돌아와 작별을 고했습니다. "잘 있어." 그가 말했어요. "잘 가." 여우가 말했습니다. "이제 내 비밀을 알려줄게. 아주 간단해.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어린 왕자는 잊지 않으려 그 말을 되뇌었어요.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장미를 위해 바친 시간이야." 다시 그 말을 따라 중얼거렸습니다.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지만 넌 잊으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영원히 네게 책임이 있어. 너는 네 장미에 대한 책임이 있는 거야." "나는 내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다." 어린 왕자는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뇌며 마음속 깊이 새겼습니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사막 한가운데서, 문득 지독한 목마름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어린 왕자는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그 길의 끝에서, 지구라는 별을 조금씩 이해하게 해 줄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 부드러운 바디감, 이디야 페르소나 드립백 커피 보기